오슬로협정 이후 사실상 폐기 수순 밟다 전쟁 발발로 다시 주목
"현재로선 먼 꿈"…현실적 걸림돌 수두룩
이·팔 '정치적 의지' 관건…"양측 지도부 바뀌어야 실질적 진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사실상 폐기 수순을 밟던 '두 국가 해법'이 대안이 될 수 있을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은 채 현 상황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해 별개의 국가를 세우는 방안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 다만, 현재로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난관이 버티고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모두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고 묻혔던 평화협상의 빛바랜 유물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고 1일(현지시간) 평가했다.
1990년대 초 오슬로 협정 체결 이후 양측은 20년에 걸쳐 두 국가 해법을 기반으로 진행됐던 양측의 대화는 2014년 이후 10년째 중단된 상태다.
이 기간 두 국가 해법의 대체적인 틀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을 동서로 분할하며 유대교와 이슬람교 성지가 몰려 있는 구시가지는 일종의 공동 통치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가 발발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 주요국 정상들은 이러한 해법을 다시 거론하고 나섰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이날 이탈리아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두 국가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NYT는 '두 국가 해법'이 국제 외교가에서만 언급되는 게 아니라, 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1990년대 후반 팔레스타인과의 협상에 관여했던 이스라엘 전문가 길리어드 셰어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한 해 걸러 한 번꼴로 폭력적으로 대치하는 패턴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사회 일각에서도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해 1천400여명을 살상한 건 팔레스타인인의 독립 열망을 직시하지 않고 갈등을 관리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비영리 단체 팔레스타인평화연합의 니달 포카하 사무총장은 "10월 7일 벌어진 일로 우리는 두 국가 해법과 관련해 더욱 창의적이고 혁신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는 평화 공존을 위해선 두 국가 해법 외에 다른 실행가능한 방안이 없다는 인식도 영향을 미쳤다고 NYT는 풀이했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현재로선 이건 먼 꿈"이라면서도 "양측 모두와 많은 해외세력이 궁극적으로는 가자지구의 통제권이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에 이양되길 원한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러나, 두 국가 해법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넘어야 할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팔레스타인 거주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는 유대인 정착촌들이 깊숙이 파고들어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선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결코 인정해선 안 된다는 유대 근본주의자들의 목소리도 커져 왔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 지도부에 평화 공존을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협상하고 시행할 '정치적 의지'가 있느냐다.
초정통파 유대교 근본주의자들과 유대 민족주의자들의 힘을 빌어 집권한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 체제의 이스라엘에서는 그런 움직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하마스의 기습을 방비 못 한 책임 때문에 이번 전쟁이 끝나면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되지만, "이스라엘의 중도, 좌파 정치인들도 10년 넘게 이 문제를 회피해 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측의 문제도 만만치 않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하마스는 1990년대 오슬로 협정 체결을 방해하기 위한 테러를 시작으로 2000∼2005년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대이스라엘 봉기) 때는 민간인을 겨냥한 무차별 자살 폭탄 공격을 가한 전력이 있다.
이번 전쟁으로 하마스가 해체되더라도 '하마스 2.0'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세력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은 잇따르고 있다.
또한 요르단강 서안을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마무드 아바스 수반도 대안이 되기에는 장기 집권과 부패 의혹 등으로 정당성을 상당 부분 상실했고 서안의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잃은 상태다.
결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모두 평화 의지가 있는 새 지도부가 들어서지 않고는 팔레스타인 독립과 관련한 논의가 진전을 보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일반 주민의 믿음을 되살리는 것도 숙제다.
작년 9월 싱크탱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는 이스라엘 유대인은 5년 전(47%)보다 15%포인트 급감한 32%에 그쳤다.
이스라엘내 아랍계 주민들은 여전히 대다수(71%)가 이를 지지했지만 역시 5년 전보다는 16%포인트나 비율이 낮아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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