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비녀 소개 日머리장식 치우고도 "DB에 한국 것으로 명시" 답변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100만 점 이상의 전시품을 소장한 세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비유럽권 문화 전문 박물관 중 하나인 독일 훔볼트 포럼 내 아시아예술·민족학박물관이 한국 유물특별전 전시물의 설명을 대대적으로 고치면서도 오류가 있었다고 인정하지는 않고 있다.
박물관 측은 한국유물특별전에서의 잇따른 오류에 대한 한국언론의 지적 이후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한국 비녀라고 소개한 일본 머리 장식을, 20일에는 젖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성의 사진을 철거했다.
이에 더해 한국국립중앙박물관이 특별전에 전시된 한국유물 120점의 전시설명에 대한 검증 결과 수정을 요구한 16점의 설명을 모두 고치기로 했지만, 이를 오류가 아닌 학계의 관례라고 설명했다.
5일 문화체육관광부와 주독일한국문화원에 따르면 훔볼트 포럼 아시아예술·인류학 박물관 측은 한국유물특별전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측이 요청한 16건의 수정 요구를 모두 반영하기로 했다.
'아리아리랑-폐쇄된 왕국에 대한 매혹'으로 이름 붙여진 특별전에서는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인류학 박물관에 소장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시대(1392~1910) 등의 한국 유물 1천800여점 중 120점을 선별해 내년 4월 21일까지 전시 중이다.
양상근 주독일문화원장은 "훔볼트 포럼 아시아예술박물관 측과 국립중앙박물관측이 요청한 16건의 수정 요구를 전부 반영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쳤다"면서 "다만, 내부 담당자의 병가 등의 사정으로 시정이 모두 즉각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3일 특별전 현장을 확인한 결과, 16건의 수정 요구 중 이미 철거된 한국 비녀라고 소개했던 일본 머리 장식과 젖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성의 사진 외에 모두 6건의 수정 요구가 반영됐다.
조선의 군복 관련 전시물 중 갑옷 어깨 위 장식이라며 여성용 머리 장식으로 비녀의 일종인 용잠을 소개했던 자리에는 '갑옷 어깨 위 장식에서 비녀 용잠까지-이 전시물은 그 크기 때문에 박물관에서 갑옷 어깨 위 장식이라고 기재됐었지만, 비녀다'라고 설명이 수정돼 있었다.
또 '코담배통'이라고 소개됐던 전시물은 '보석걸이'로, '남성들의 식기'라고 소개됐던 은장도는 '장식용 비수'로 '거북이형화 약통'은 '거북이형 화약통'으로, '환도'는 '검'으로 각각 고쳐졌다.
라스 크리스티안 코흐 훔볼트포럼 아시아예술·인류학 박물관장은 전시물 철거 이후 연합뉴스와 만나 "이는 한국 국립중앙박물관 등의 피드백에 대한 우리의 대응으로 양측 연구 결과를 맞춰보고 전시설명을 바꿔나갈 것"이라며 "훔볼트포럼은 대화를 위한 플랫폼이기 때문에 이는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장품이 매우 많기 때문에 우리는 유연하게 전시물을 교체할 수도 있고, 밖에서 하는 얘기에 대해 대응할 수 있다"면서 "이런 특별전 내용을 고정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한국관 전담 큐레이터인 마리아 소보트카씨는 어떻게 특별전 전시물 설명에 오류가 16건에 달하게 됐느냐는 연합뉴스의 질의에 "이는 오류가 아니다"라면서 "학계에서는 토론이 관례고, 그 과정에서 특정 주제에 대해 여러 가지 전문적인 의견이 있다. 전시 개막 이후 혹시 전시물에 대한 피드백이 있는 경우, 이에 대해서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동료들과 협의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일본 여성의 머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한국 비녀로 소개한 것과 관련, "해당 비녀는 우리 데이터베이스에는 한국 것으로 기재돼 있다"면서 "수집가는 그 비녀를 한국에서 한국 비녀로 구매했다. 일본 머리 장식의 근대화된 한국 버전일 수 있고, 일본 스타일로 한국에서 생산됐을 수도 있다. 추가조사를 위해 해당 전시물을 전시장에서 일단 뺐다"고 밝혔다.
해당 머리 장식이 한국 비녀가 아니라 일본 것으로 추정된다는 데에는 연합뉴스가 자문한 복수의 박물관 전문가들과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의 학술적 기초를 제공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 훔볼트 포럼 인류학박물관의 한국 소장품에 대한 연구프로젝트 결과가 일치했다.
소보트카씨는 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의 사진에 '자랑스러운 어머니들'이라는 제목 아래 조선시대 여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매우 자랑스러워하며 가슴을 드러냈다는 서구인들의 속설을 기재한 근거로는 2004년 발표된 숙명여대 한희숙 교수의 논문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시 당시 설명에는 이 논문 전후 이뤄진 이런 속설에 대한 논란이 담기지 않았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전시설명은 훔볼트포럼의 고유권한이지만, 대여유물 때문에 전시맥락을 보려고 개막전 전시설명 최종본을 보내달라고 계속 요청했으나 받지 못했고, 개막 후에야 검증할 수 있었다"면서 "검증이 필요할 경우 도움을 줄 학예인력 집단을 200명 보유한 만큼 이미 학술 자문을 하고 있지만, 다른 기관과 공조해 더욱 쉽게 응대하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체제를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주독일한국문화원은 2021년 12월 훔볼트 포럼 아시아예술·민속학 박물관을 관할하는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과 한국전시실의 연구, 조사, 전시강화를 위한 3년간의 지원협약을 체결하면서 전시 큐레이터 임금과 전시 프로젝트비 등 48만 유로(약 6억8천665만원)를 일괄 지급했다. 문체부의 국외 박물관 한국실 지원사업의 일환으로다.
이번 특별전에는 한독수교 140주년 기념 예산 2억5천만원도 투입됐다.
지난해 10월 채용 당시 한국관 전담 큐레이터의 업무로는 한국 문화와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관점에서 한국 컬렉션을 맥락 안에서 규명·연구, 박물관 소장품에 관한 학술적 분류와 기원 연구, 컬렉션 구성품의 역사, 출처연구, 사회문화적 연관성 연구 등이 꼽혔다.
주독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와 관련, "일단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정을 요청한 16건의 사항이 모두 반영이 되는 데 최선을 다하되, 그 작업이 완료되면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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