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정부가 8일 올들어 세 번째 전기요금 인상안을 발표했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주택용과 소상공인·중소기업용 전기요금은 동결하는 대신 주로 대기업이 사용하는 대용량 산업용 전기요금만 kWh(킬로와트시)당 평균 10.6원 올린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기준 대용량 산업용 전기를 이용하는 한국전력 고객은 전체 고객의 0.2% 수준이지만 이들의 전력 사용량은 전체의 48.9%로 절반에 가깝다. 한전은 이날 전기요금 인상과 더불어 추가 자구책을 내놨다. 서울 공릉동 인재개발원 부지와 자회사 지분 일부를 매각하고, 본사 조직을 20% 축소하는 방안이다. 정부가 이번 전기요금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한전에 '뼈를 깎는' 고강도 자구책을 요구한 결과다.
한전은 전기요금의 원가 상승 요인을 반영해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했지만, 물가와 서민경제에 미치는 부담을 고려해 주택용 및 소상공인용 전기요금은 동결한다고 설명했다. 천문학적인 부채를 안은 한전의 재무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기요금 인상이 꾸준히 꼽혀왔는데, 결국에는 산업용 요금만 올리기로 한 것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에 민감한 여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표'를 의식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용에 한정된 전기요금 인상으로 한전의 재무 상황이 얼마나 개선되느냐가 관건이다. 한전에 따르면 이번 인상으로 올해 말까지 4천억원의 재무 적자를 해소할 수 있고, 연간으로 따지면 2조8천억원가량의 적자 감축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것으로 한전채 발행 한도에는 조금 숨통이 트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전력 구입 단가보다 판매 단가가 낮아 팔면 팔수록 손실이 나는 한전의 역마진 구조를 해소할 근본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전은 올 상반기 기준 부채가 201조원에 달하는 심각한 재무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 이자 비용만 올해 4조4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급등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전기요금에 온전히 반영되지 않아 2021년 이후에만 47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본 것이 부채 급증의 주된 요인이다. 더 문제는 전기요금을 작년부터 올해까지 5차례에 걸쳐 40% 가까이 올렸는데도 이런 상황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전기요금을 제때 현실화하지 못했다는 의미다. 올해 1, 2분기를 합쳐 kWh당 22.1원 오른 전기요금은 산업부가 2026년 한전 경영 정상화를 목표로 국회에 보고한 연간 전기요금 인상 적정액 51.6원의 약 40%에 불과했다. 역마진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선 요금을 올려 요금이 원가보다 낮아 생기는 손실 폭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한전이 안은 부담은 언젠가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적자는 세금으로 메우든, 향후 전기요금 추가 인상을 하든 두 가지 중 하나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 전기를 싸게 쓰면 미래 세대에 그만큼 비용이 전가되는 것이다. 정부는 이전 문재인 정부가 제때 전기요금을 조정하지 않아 한전이 엄청난 적자를 안게 됐다고 지적해 왔다. 비슷한 우를 다시 범하지 않아야 한다. 한전의 천문학적인 부채 원인과 심각성을 국민에게 솔직히 알리고 전기요금을 적절하게 현실화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 있는 자세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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