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회의 의장 "무능력 인정한 것", 주요 야당 "이탈리아판 관타나모"
멜로니 총리·각료들 "EU와 비EU 국가 간의 협력 모델…법 위반 아니다"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이탈리아가 자국에 들어온 불법 이주민을 아드리아해 맞은편 발칸반도 국가 알바니아로 보내기로 한 계획과 관련해 이탈리아 안팎에서 비판이 터져 나오고 있다.
8일(현지시간) 안사(ANSA) 통신 등에 따르면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지난 6일 로마에서 에디 라마 알바니아 총리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난민센터 두 곳을 알바니아에 건설하고 내년 봄부터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바니아 서북부 셴진 항구에는 이주민들이 망명 신청이 날 때까지 머물 수 있는 시설을 짓고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20㎞ 떨어진 자더르 지역에는 송환 대상 이주민을 위한 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회원국(이탈리아)이 망명 절차를 비회원국(알바니아)에서 외주로 처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지적했다.
멜로니 총리는 전날 로마 지역 일간지 일 메사제로와 인터뷰에서 "이번 협약은 이주민 관리에서 EU와 비EU 국가 간의 협력 모델이 될 수 있다"며 "이 합의에는 대담한 유럽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멜로니 총리의 계획이 발표된 이후 이탈리아 내에서는 이번 합의가 합법적이고, 윤리적이며, 심지어 현실적인 방안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인 마테오 주피 추기경은 이날 이주민 관련 행사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탈리아 정부가 알바니아에 난민센터를 짓기로 한 것은 이주민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피 추기경은 "나는 이탈리아 정부가 왜 체계적으로 이주민을 수용할 수 없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이것은 정부가 스스로 무능력을 인정한 것이다.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요 야당은 이탈리아에 들어온 이주민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제3국으로 이송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탈리아와 알바니아의 이주민 협정에 대해 "국제법과 유럽법을 공공연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슐라인 대표는 "멜로니 총리가 이주민 관리를 해외에 맡기는 대신 민족주의 유럽 동맹국에 이탈리아를 혼자 두지 말고 (망명 신청자를) 함께 수용하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군소 야당인 '+에우로파'의 리카르도 마지 대표는 "이탈리아 정부는 EU 바깥에 국제 표준을 벗어난 일종의 이탈리아판 관타나모를 만들고 있다"면서 "바다에서 구조된 사람들을 마치 소포나 물건처럼 비EU 국가로 이송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탈리아 유럽의회 의원인 브란도 베니페이는 전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이탈리아와 알바니아 간의 합의는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는 모든 방법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확산하자 정부가 진화에 나섰다.
마테오 피안테도시 내무부 장관은 이날 "라마 알바니아 총리가 직접 말했듯이 이번 합의는 우호적인 형제 국가와 협력의 결과"라며 "혁신적인 방안이 종종 논란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전체 계획이 모두 드러나면 논란은 알아서 정리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토니오 타야니 부총리 겸 외무장관은 "알바니아와 체결한 협정은 모든 EU 법률을 준수한다"며 국제법과 유럽법 위반이라는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들, 이탈리아에 입국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을 출신 국가로 돌려보내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유럽의 난민법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이 처음 도착한 국가에서 난민 신청을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 등은 이를 근거로 이탈리아가 자국에 들어온 이주민들을 알바니아로 보내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해안경비대가 지중해에서 구조한 이주민들을 곧바로 알바니아의 셴진 항구로 데려갈 것이기에 국제법 위반 소지가 없다고 반박한다.
일단 EU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아니타 히퍼 EU 집행위원회 이민·내무담당 대변인은 전날 "더 언급하기 전에 그들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싶은지 이해해야 한다"며 협정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올해 들어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에 들어온 이주민들이 14만5천700명으로 지난해 8만8천400명에 비해 급증하면서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민·난민 혐오 정서를 등에 업고 지난해 10월 집권한 멜로니 총리는 지중해를 건너는 밀항선의 주요 출항지인 튀니지와 리비아 정부에 경제 지원을 대가로 불법 출항 단속을 요청하고, 밀입국 브로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처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9월에는 망명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이주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구금 시설을 새롭게 짓는 법안을 통과시켰지만, 이 법안은 각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인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주지사들은 자신의 뒷마당에 이주민 구금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원치 않고, 진보적인 주지사들은 이주민을 감옥과 같은 환경에 두는 것에 반대했다.
이번 협정은 이주민 문제 해결이 시급한 이탈리아와 EU 가입 지지를 바라는 알바니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이뤄진 것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어 있다.
이탈리아 이주민법 연구협회의 이주민 변호사인 귀도 사비오는 "이 모든 조치는 선전에는 좋지만, 실제적이고 정치적인 해결책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며 "상징적인 가치는 있지만 수치로만 보면 양동이로 바닷물을 퍼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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