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보다 북한을 먼저 떠올리기도…교과서 속 한국은 '전쟁과 분단'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지내다 보면 종종 "한국에서 왔다"는 말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면 "남한, 북한 중 어디서 왔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남한이라고 답하면서 반대로 되물을 때가 있다. "어느 쪽을 먼저 떠올리세요?"
지난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사회생활을 시작한 리자(18)는 남한보다는 북한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고 답했다.
그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냥 북-남 순서로 말해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케이팝을 좋아하고 한국에 관심이 많은 리아(21)도 "최근 한국 문화와 화장품 등 제품의 인기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보통 러시아 사람들은 북한을 먼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 교육의 영향이냐고 물으니 리아는 "특별히 한국을 비중 있게 배우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9월 배포된 러시아 고교 새 역사 교과서를 살펴보니 한국에 대한 내용은 '한국전쟁' 관련으로 길지 않았다.
교과서는 한국전쟁에 대해 "1950년 발발해 미국과 소련 간의 세계 대전에서 가장 큰 군사적 대립이 됐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가장 유혈이 낭자한 국지적 갈등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첫 번째 공격을 시작, 남한 수도를 점령하자 남한이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미국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이 중국 국경 쪽으로 후퇴한 이후에는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구하기 위해 긴급 조치를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1950년 11월 100만명에 가까운 중국군이 한반도에 진입했다. 소련은 북한 지역과 부대에 전투기를 투입할 것을 약속했다. 소련 조종사들은 비밀리에 투입됐다"고 서술했다.
소련과 중국이 북한을 도우면서 한국과 미국이 후퇴하고, 결국 38도선 옆에서 휴전선이 그어진 상황에 대해 교과서는 "한국은 2개의 나라로 나누게 됐고, 이 분열은 오늘날까지 극복되지 않았다"고 표현했다.
짧은 내용 속에서 러시아 학생들은 전쟁이라는 극한의 대립 상황에서 소련이 북한을 지원하며 밀접한 관계를 맺었음을 배우고 있다.
소련은 1991년 해체됐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여전히 북한에서 소련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 보면 북한 관광을 다룬 기사나 블로그 글이 종종 눈에 띈다.
특히 지난달 북한을 방문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러시아 관광객들에게 북한을 휴가지로 추천하겠다고 언급한 이후로 북한 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듯하다.
러시아 여행사에 북한 관광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는 현지 보도도 나왔다. 러시아 여행 블로거들의 실제 북한 관광 경험담도 주목받고 있다.
북한 여행에 대한 관심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비롯한 측면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그런데 러시아 매체 '모스콥스키 콤소몰레츠'는 한 여행사 직원의 흥미로운 분석을 소개했다.
북한을 여러 번 찾을 정도로 북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북한에서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느낌을 즐기거나 소련 시절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북한 여행기를 소개한 블로거 '트래블매니악'은 북한의 식료품점을 소개하면서 1990년대 소련 시절 상점이 연상된다고 밝혔다.
최근 국제뉴스 화두 중 하나는 '북러 밀착'이다. 지난 9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으로 긴밀해진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확인됐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좁아진 러시아와 이미 고립된 국가 북한이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복잡한 세계정세 속 군사적·전략적 이유 외에도 북한을 정서적으로 가깝다고 느끼는 러시아인들이 많다는 것도 북러 밀착 진행 상황을 이해하는 한 가지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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