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팔 전쟁] '하루 4시간' 교전중지 합의했지만…휴전은 난망

입력 2023-11-10 11:16   수정 2023-11-10 12:01

[이·팔 전쟁] '하루 4시간' 교전중지 합의했지만…휴전은 난망
민간인 피란에 도움 기대되지만 시가전 계속되면 인명참사 우려
바이든·네타냐후, 국제사회 비판에도 "휴전 없다" 한 목소리
9일 하루 가자 북부 팔레스타인 8만명 대피 통로로 탈출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일시적 교전 중지를 밝혔지만 국제사회가 요청해온 휴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자지구의 인도적 위기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물음표가 붙는다.
미국 백악관은 9일(현지시간) 민간인들이 교전 지역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기 위해 이스라엘이 매일 4시간씩 가자지구 북부에서 교전을 중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온라인 브리핑에서 교전 중지가 이날부터 시행되며 이스라엘이 매일 교전 중지 3시간 전에 이를 시행하는 시간을 발표한다고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시가전이 치열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스라엘이 매일 특정시간을 선택해 공격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백악관의 이날 발표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인도적 재앙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을 의식한 타협물로 해석된다.
지난달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한 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전력 공급을 차단하는 등 봉쇄 정책을 강화한 뒤 가자지구를 연일 공습하고 지난달 27일부터 보병, 탱크 등을 투입한 지상 공격에 나서면서 팔레스타인 인명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전쟁 한 달 만에에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사망자가 1만명이 넘었고 이 가운데 어린이가 4천명이 넘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소탕을 명분으로 가자지구 내 병원 인근과 난민촌 등을 가리지 않고 공습하면서 민간인들의 인명피해를 키웠으며 가자지구는 의약품과 식수, 식량, 전기 등의 부족으로 '생지옥'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이스라엘을 향해 휴전을 촉구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 6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가자지구가 어린이의 무덤이 되고 있다며 즉각 휴전을 호소한데 이어 8일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자 숫자는 이스라엘의 군사 작전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등 중동 아랍국가들뿐 아니라 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도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희생자를 줄이려면 휴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듯 미국은 최근 중동에서 긴박하게 움직였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3일 이스라엘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나 인도적 목적의 일시적 교전 중단을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또 미국 매체 악시오스 보도에 따르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 네타냐후 총리와의 통화에서 인질 석방을 위해 이스라엘군이 하마스와의 교전을 사흘간 중단할 것을 제안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강화하며 일시적 교전 중단에 난색을 표명하다가 미국의 압박, 국제사회의 여론 악화 등을 감안해 하루 4시간 교전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발표는 완전히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 기존 인도주의 조치를 확대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스라엘군 국제 미디어 담당 대변인인 리처드 헥트 중령도 이날 "계획된 교전 중지는 일주일에 두차례 4시간 동안 민간인의 남쪽 이동과 구호품 이동을 위해 이스라엘이 이어온 인도적 통로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이번 결정으로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피란, 구호품 이동 등의 인도주의적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커비 백악관 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이스라엘의 교전 일시 중지에 대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한 걸음"이라며 "특히 민간인들이 전투행위의 영향에서 벗어나 안전한 지역으로 이동할 기회를 보장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커비 조정관은 가자지구에서 기존 인도주의적 통로에 더해 해안가 도로를 인도주의적인 이동 통로로 연다고도 설명했다.
이스라엘 국방부 산하 팔레스타인 민간 업무 조직인 민간협조관(COGAT)은 9일 가자지구 북부의 팔레스타인인 8만명이 대피 통로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전날 가자지구 북부에서 5만명이 대피한 것과 비교하면 3만명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완전히 포위한 가자시티에는 하마스 조직원뿐 아니라 아직도 민간인이 수십만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군의 일시적 교전 중지와 인도주의적 이동 통로의 추가로 가자시티에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이 피란할 것인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자지구를 통치해온 하마스와 사전에 조율되지 않았다는 점도 변수로 꼽힌다.
하마스 측은 일시적 교전 중지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어떤 부분도 합의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8일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통제력을 잃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하마스가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피란을 방해하는 등 비협조적 태도로 나올 수 있다.
하마스는 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민간인 소개령을 내렸을 때도 이스라엘의 선전전에 불과하다며 팔레스타인인들이 집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인도주의적 교전 중지가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를 막기에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군이 앞으로 시가전을 강화할 경우 가자시티 도심에서 하마스 조직원들과 민간인들을 구별하기 어려운 만큼 피란하지 않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늘어날 공산이 크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휴전 반대 입장을 고수 중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바이든은 그의 당(민주당) 일부와 전 세계의 전면 휴전 요청에 동참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일리노이주에서 열리는 일정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 D.C.를 떠나기에 앞서 휴전 가능성을 묻는 기자 질문에 "없다. 가능성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미국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민간인 대피를 위해 매일 4시간씩 교전 중지에 대해 미국과 합의했지만 휴전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향한 휴전 촉구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최대 무슬림 단체 미국 이슬람관계위원회(CAIR)의 부책임자 아흐메드 미첼은 이날 성명을 내고 '하루 4시간 교전 중지'에 대해 "타당하지 않다"며 "우리는 가자지구 북부에서 인종청소가 아니라 가자지구 전역의 휴전이 필요하다"고 비판했다.
아랍권 매체 알자지라방송에 따르면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보고관인 프란체스카 알바네제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가자지구에서 4시간의 '인도적 교전 중지'가 발표됐다"며 "가자지구에 갇힌 팔레스타인인들과 인질들, 특히 어린이들이 33일 동안 밤낮없이 폭격을 당하는 것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라"고 적었다.
noj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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