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미국 미네소타주 출신의 한국전 참전용사인 얼 메이어는 아흔 여섯살이 된 지금도 70여년 전 적의 포화 속에 진격하다 왼쪽 허벅지에 포탄 파편을 맞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메이어의 허벅지에는 아직도 파편이 남아있다. 신경에 너무 가까이 박혀있는 바람에 제거수술이 더 위험하다고 해 그대로 뒀다. 의사들도 이 상처가 전투 중 박격포 파편에 맞아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는 전투 중 다친 미군에게 미국 정부가 수여하는 '퍼플하트' 훈장을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 뒤늦게 훈장을 신청했다가 입증 서류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10일(현지시간) 메이어의 사연을 소개하면서 전쟁의 혼란과 기록 부족,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 참전용사들이 공훈을 인정받기가 얼마나 어려워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보도했다.
메이어는 1951년 6월 전투 중에 파편을 맞았다고 한다.
그는 훈장 신청 때 제출한 진술서에서 "처음에는 다친 줄도 몰랐다. 하지만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곳에서 부대가 전진하는 과정에서 내 바지가 다리에 들러붙었고, 이를 떼어내려 뻗은 손이 피투성이가 된 것을 발견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당시 부상이 당장 전장에서 빠질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함께 복무한 다른 군인들에 비해 크지 않은 부상이라고 생각해 퍼플하트를 신청할 생각도 안했다.
그의 세 딸은 아버지가 한국전 때 다친 적이 있다는 건 어릴 때부터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은 몰랐다. 전쟁 이야기를 꺼리는 다른 많은 참전용사들과 마찬가지로 메이어 역시 전쟁에서 겪은 일을 많이 언급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약 10년 전에 아버지가 어떻게 상처를 얻었는지 알게 된 딸들이 그를 설득해 퍼플하트 훈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기록이 충분치 않다는 점이 걸림돌이 됐다.
메이어는 파편을 맞은 며칠 후 허리를 다쳐 미군 이동외과병원(MASH)으로 이송된 뒤 다시 병원선으로 옮겨졌다. 이때도 구멍이 뚫리고 피 묻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그는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살아나왔다는 것을 기뻐하기만 했지 부상 관련 서류를 챙길 생각은 못 했다고 돌아봤다.
다쳤을 때 다리에 붕대를 감아준 의무병이 당연히 제출했겠거니 여겼지만, 남은 서류는 없었다. 메이어는 의무병도 전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결국 당시 기록 가운데 파편 부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입원할 때 맞은 파상풍 주사 정도였다.
2005년 미니애폴리스의 보훈병원에서 진찰받았을 때 의사들은 메이어의 다리부상이 전투 중에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보고서에는 가능성이 50대 50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이런 의견이라도 덧붙여 2020년 퍼플하트 훈장을 신청했지만 육군은 더 많은 입증 서류가 필요하다고 반려했고 지난 4월 최종 거부 결정을 내렸다.
미국 재향군인회(AL:American Legion)의 장애 청구·항소 전문가인 토니 크로스는 메이어처럼 수훈이 거부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메이어는 결국 지난 9월 국방부와 육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의 변호사는 이전에 메이어와 유사한 경우에 퍼플하트를 수여한 사례가 있으며, 수훈 결정을 의무기록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1952년 명예제대한 메이어는 지상전투 최일선에 참여한 군인에게 주는 전투보병휘장(Combat Infantryman Badge)과 제2차대전 때 상선단 소속에 주어진 의회 명예 황금 훈장(Congressional Gold Medal)을 받았다.
메이어의 딸 샌디 베이커는 퍼플하트를 받는 것이 아버지에게 "마무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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