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대 교수, 아사히 인터뷰서 日정부 '모르쇠'에 "당황스러워…후대에 전할 역사적 사실"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일본 정부가 100주년을 맞은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 대해 2009년 공개된 보고서에서 일본인의 조선인 '살상'을 기술한 연구자가 학살을 부정하거나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스즈키 준 도쿄대 교수는 아사히신문이 14일 보도한 인터뷰에서 "간토대지진으로부터 100년이 지나면서 생존자는 거의 없고, 가해 경험도 옅어지고 있다"며 지금도 사라지지 않은 학살 정당화 견해는 큰 오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학살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과 관련해 "당황스럽다"며 "해당 보고서는 대지진 당시 정부 발표로부터 언급할 수 있는 '최저한'의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스즈키 교수가 필자로 참여한 '간토대지진 보고서' 제2편은 일본 행정기관인 내각부가 설치한 중앙방재회의가 펴냈으며, 지금도 내각부 방재 정보 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그는 보고서 후반부에 실린 '살상 사건의 발생'을 집필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살상의 대상이 된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으나, 중국인과 일본인도 적지 않게 피해를 봤다"며 살상 사건에 따른 희생자 수는 간토대지진 당시 사망자 10만여 명 중 1∼수 %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스즈키 교수는 보고서에서 헛소문 등이 유포돼 조선인 등이 살해된 사건을 '살상'이라고 했지만, 무기를 갖춘 다수의 사람이 무장하지 않은 소수자를 상대로 폭행을 가한 끝에 살해했다는 점에서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고 서술했다.
그는 아사히와 인터뷰에서 '살상 사건'이라고 쓴 데 대해 "공문서에 '살상'이라고 적혀 있다"면서도 "대지진 2년 후에 나온 경시청 자료에는 '박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보고서 내용과 관련해 "선행 연구가 지적한 대로 (학살) 희생자 수도 내용도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취지였다"며 "간토 지방에서 한반도 출신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다친 것은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인 희생자 수를 간토대지진 당시 정부가 인정한 '살상' 수치로부터 가져와 오히려 피해 규모를 과소평가한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보고서를 정리했다고 밝혔다.
그는 "소문을 믿은 일본인이 한반도 출신 사람을 살상했다는 점에서도, 차별 감정을 가진 특정한 속성의 상대를 살상했다는 추상적 차원에서도 (학살은)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할 역사적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간토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 발생했다. 일본 정부는 대지진 직후 계엄령을 선포했고, 일본 사회에는 다양한 유언비어가 퍼져 6천여 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자경단 등에 의해 살해됐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