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받는 주부 삶 다룬 영화 흥행 맞물려 국민적인 관심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전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도주한 혐의를 받는 이탈리아 대학생이 독일에서 체포됐다고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이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살인 용의자 필리포 투레타(22)는 이날 독일 라이프치히 인근에서 국제 형사 공조를 통해 검거됐다.
이탈리아 동북부에 있는 파도바대 정보공학과에 재학 중인 그는 전 여자친구이자 같은 과에 다니는 동갑내기 줄리아 체케틴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체케틴의 시신은 전날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북쪽으로 약 120㎞ 떨어진 바르치스 호수 인근의 배수로에서 발견됐다. 머리와 목에선 자상이 확인됐다.
이번 사건은 체케틴이 실종된 지난 11일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집중됐다.
경찰은 체케틴의 집 근처 CCTV에서 투레타가 체케틴을 폭행한 뒤 차량에 강제로 태우는 영상을 입수한 뒤 투레타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행방을 쫓았다.
그러나 경찰이 수색에 나선 지 일주일 만에 체케틴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조르자 멜로니 총리는 전날 체케틴의 시신이 발견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불안한 마음으로 사건의 진행 상황을 지켜봤다.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경찰은 그가 자국으로 송환되면 입국장에서 체포영장을 바로 집행할 방침이다.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이탈리아에선 페미사이드(여성 살해)가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탈리아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체케틴은 올해 들어 103번째 페미사이드 희생자가 됐다.
이 중 대부분인 83건은 연인이나 가족과 같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리아에서 그간 빈번하게 발생한 여성 살해 사건 중에서 체케틴 사건이 유독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데에는 영화의 힘을 꼽는 의견도 많다.
이탈리아 여배우 파올라 코르텔레시의 감독 데뷔작인 '체 안코라 도마니(C'e Ancora Domani·내일은 아직 있다는 뜻)가 바로 그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로마에서 학대받는 주부의 가정사를 다룬 이 흑백영화는 가부장제와 여성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부각하며 올해 최고의 화제작이 됐다.
지난달 개봉한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 중에서 관객 수 1위에 오르는 등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잡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사회적 파급력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체케틴 실종 사건이 발생하면서 국민적인 관심이 쏠린 것이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PD)의 엘리 슐라인 대표는 여성에 대한 폭력 방지를 위해 학교에서 여성 인권 존중과 성교육을 의무화하는 법을 즉각 제정하자고 멜로니 총리에게 제안했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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