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총통선거 야당 단일화 무산, 이젠 '각개전투'…'혼전' 예상

입력 2023-11-24 15:12   수정 2023-11-24 16:12

대만 총통선거 야당 단일화 무산, 이젠 '각개전투'…'혼전' 예상
선두 집권당 라이칭더 지지율 하락세·야당 후보들 상승세 지속 여부가 관건
'미중 대리전' 양상 속 中의 대만 압박 강화될 듯…美 '간접 개입' 여부도 촉각

(타이베이·서울=연합뉴스) 김철문 통신원 인교준 기자 = 대만 야당의 총통선거 후보 단일화가 24일 결국 무산되면서 내년 1월 13일 치러질 총통선거가 각개전투 양상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현재로선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려온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 라이칭더 후보가 다소 유리한 입장이지만, 2·3위 후보와 지지율 격차가 크지 않아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후보 단일화를 통한 독립 성향 민진당의 재집권 저지에 혈안이었던 중국의 추후 움직임에 관심이 쏠린다. 친미 정권 등장을 바라면서도 '중립'을 천명해온 미국의 태도 역시 주목된다.



◇ '이견' 허우유이·커원저, 제 갈 길…라이칭더 유리하지만 '하락세' 변수
지난 15일 제1야당인 국민당과 제2야당인 민중당이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으나, 누가 총통 후보가 되느냐를 두고 맞선 끝에 양측은 결국 '마이웨이'를 선택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단일화 시 국민당 허우유이 후보와 민중당 커원저 후보 중 누가 후보가 되든 민진당 라이칭더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지만, 두 후보 모두 양보하지 않았다.
여론조사 오차범위를 둘러싼 다툼으로 18일 1차 총통 후보 단일화 협상이 실패했고, 23일 2차 협상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무소속 궈타이밍 후보 중재로 열린 2차 협상에서도 이 문제로 허우 후보와 커 후보 입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단일화 무산 배경엔 '지지율 기류 변화'가 한 원인으로 보인다.
대만 인터넷 매체 '미려도전자보'(美麗島電子報·My-Formosa.com)가 대만 유권자 1천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전날 발표한 총통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잘 드러난다.
라이 후보 지지율이 하락했지만 허우 후보와 커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상승했다.
3자 대결 시 라이 후보는 31.8%의 지지율로 1위긴 하지만, 허우 후보(29.6%)와 커 후보(27.1%)에 오차범위 수준에 있다. 2, 3위 후보들도 '해볼 만하다 하다'고 판단했음 직하다.
궈 후보를 포함한 4자 대결에서도 라이 후보는 한 달 전 조사(32.5%)에 비해 2.1%포인트(p) 하락한 31.4%였지만, 허우 후보와 커 후보는 각각 5.3%p(21.9%→27.2%)와 2.5%p(20.4%→ 22.9%) 상승했다.
50일 가까운 시간이 있는 만큼 두 야당 후보로서는 굳이 단일화하지 않더라도 각개 전투를 통해 승리를 꿈꿀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커 후보와 허우 후보는 이날 차례로 민중당, 국민당 총통 후보로 등록했다.
여론조사에서 10% 안팎 지지율을 기록 중인 궈 후보는 커 후보 지지 선언을 한 뒤 불출마를 선언할 거라는 관측이 현지에서 나온다.
일단 지지율 선두인 라이 후보가 가장 유리한 입장으로 보이지만, 라이 후보 지지율이 최근 하락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판세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 野 단일화 무산 불구 대만 정권교체 갈망하는 中…다음 선택은
중국으로서는 대만 야당 단일화 실패로 '떼어 놓은 당상'으로 여겼던 민진당의 집권 저지 목표가 흐릿해진 데 당혹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중국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선거에 개입할 공산이 커 보인다.
미국이 장기적인 경기침체의 중국에 첨단기술 제재로 미래 산업 발전 역량을 차단하려는 상황에서 세계 첨단반도체 산업 선두권 대만은 중국에 절실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별행정구로 여기는 대만을 당장 통일하지는 못하더라도 '친중 대만' 존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미국에 유럽연합(EU)까지 가세해 중국이 첨단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 등 미래 첨단기술 산업에 접근할 기회를 봉쇄하는 디리스킹(위험 제거 등)을 돌파하려면 '대만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중국이 친미로 분류되는 독립 성향 민진당의 재집권을 용인할 수 없는 까닭인 셈이다.
친중 세력인 마잉주 전 총통에 이어 2016년과 2020년 연이어 집권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 수용을 거부해온 차이잉원 총통의 민진당 정권을 상대로 중국은 8년 가까이 관계를 단절해왔다.
여기에 민진당 라이 총통 후보는 물론 샤오메이친 부총통 후보 모두 친미·독립 성향의 인물이라는 데 중국은 강한 거부감을 표시해왔다.
관영 중국 중앙TV(CCTV)는 21일 '라이칭더·샤오메이친 '두 독립 조합'(雙獨組合)은 대만을 재앙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가장 위험한 조합"이라고 공격했다.
이 때문에 중국이 단일화 실패에도 불구하고 민진당 재집권 저지 활동을 지속할 것이라는 점은 불문가지다.
구체적으로 대만해협 위기 고조·대(對)대만 경제제재는 물론 친중 고위인사를 겨냥한 방중 초청과 대만 이민자에 대한 특별 대우 등의 '강온양면' 전략을 가속할 것이라는 게 대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특히 중국이 무역 제재 또는 양안 경제협력기본협정(ECFA) 제한·파기 등의 조치로 '친중 후보'를 선택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피해가 막심할 것이라는 '경제 억압' 메시지를 적극 발신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중국은 대만이 불법적인 무역 제한을 하고 있다고 규정하면서 조사 기간을 총통 선거 하루 전날인 1월 12일까지로 연장한 바 있다. 이를 놓고 '친중 총통'을 뽑지 않으면 엄청난 경제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는 위협이라는 해석도 있다. 대만의 대중국 무역의존도가 40%를 넘긴 상황에서 ECFA 제한·파기 조치 역시 감당하기 쉽지 않다.
대만 내에서 이런 중국의 위협이 '통한다'는 분석도 있다. 대만 해협의 평화·안정과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친중 선택'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친중 허우 후보 지지율이 우상향 곡석을 그리는 것도 이런 상황과 연관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사실상 '미중 대리전' 속 美 대응책은…필요시 '간접 개입' 가능성도
미국으로선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는 않다.
대만과 대만해협 현상 변경은 용납할 수 없지만,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인 미국은 중국처럼 대만 선거에 개입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대만관계법과 '6개 보장'(Six Assurances) 등을 바탕으로 대만과 비공식 관계를 유지해온 미국은 대만이 스스로 방어할 수 있도록 무기를 판매하고 있지만, 대만에 첨단무기를 판매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어긋난다는 중국 항의에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사실 패권 도전국인 중국의 '대국 굴기'를 용납할 수 없는 미국으로선, 대만에 친중 정권이 서는 걸 바라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만에 친중 정권이 들어서면 대중국 압박 망인 인도태평양전략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고 디리스킹 역시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립 국가인 대만의 총통선거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천명해왔지만, 속마음으로는 친미 성향 민진당 재집권을 바라고 있는 이유다.



이 때문에 미국은 내정 개입 불가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적절한 수단으로 대만을 영향권 내에 두려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현지시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에게 대만해협 인근에서 군사 활동을 자제하고 대만 선거 절차를 존중하라고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외교가에선 차후 대만 총통선거 구도가 중국에 일방적으로 유리해지는 상황이 조성되면, 미국 역시 '간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미국이 자국에 투자하는 대만 기업들의 세금 부담을 줄여주는 이중과세방지협약을 서두르는 한편 양국 간 조세협정에 속도를 내는 것도 카드가 될 수 있다. 대만 방어 차원의 첨단무기 판매를 늘리는 방안도 있다. 유권자들 사이에 친미 정서를 확산시킨다는 차원이다.
kjih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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