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 예산대란' 독일 86조원 구멍 어떻게 메우나

입력 2023-11-26 00:34  

'사상 초유 예산대란' 독일 86조원 구멍 어떻게 메우나
독일 총리 "신속한 해결 약속"…내년 가스·전기요금 상승 불가피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사상 초유의 예산대란을 맞은 독일 신호등(사회민주당·빨강, 자유민주당·노랑, 녹색당·초록) 연립정부가 예산 위헌 결정으로 부족하게 된 최소 86조원을 어떻게 메울지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신속한 해결을 약속했지만, 당장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한 가스·전력 요금 지원을 올해 연말 조기 종료하기로 하면서 가계에 타격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숄츠 총리는 24일(현지시간) 2분 48초짜리 대국민 영상메시지를 통해 헌법재판소의 올해와 내년 예산 위헌 결정 이후 정부가 사상 초유의 예산집행 중단 사태를 맞은 것과 관련, 신속한 해결을 약속했다.
숄츠 총리는 중요한 것은 헌재가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 지원은 계속 가능하다고 밝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위기 상황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대응지원, 아르탈 수해 피해자 지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등한 전력·가스요금 완화 지원 등이 해당한다.
다만 이를 위해 빚을 낼 때는 매해 연방의회에서 의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독일이 미래에도 강력한 산업과 좋은 일자리, 높은 임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변함없이 현대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숄츠 총리는 "내년 예산은 헌재 판결에 따라 빠르고 세심하고 정확하게 수정할 것"이라며 오는 28일 연방의회에서 국정보고를 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헌재는 지난 15일 독일 정부의 올해와 내년 예산이 헌법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단했다. 문제가 된 것은 정부가 부채 제동장치를 회피하기 위해 활용한 특별예산이다.
2021년 코로나19 위기 와중 집권한 숄츠 총리의 신호등 연립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대대적인 신규사업을 약속하면서 부족한 재원을 메우기 위해 코로나19 대응에 쓰이지 않은 600억 유로(86조원)를 기후변환기금(KTF)으로 전용하기로 했다.
독일 헌법에 규정된 부채제동장치는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0.35%까지만 새로 부채를 조달할 수 있도록 제한한다. 다만, 자연재해나 특별한 위기 상황에서는 연방의회에서 적용 제외를 결의할 수 있다.
2021년에는 코로나19 위기로 부채제동장치 적용 제외가 결의돼 있었기 때문에 당해 사용하지 않은 돈을 추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에 최대 야당인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이런 예산전용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재는 이에 관해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KTF를 위한 국채 발행 허가를 철회했다.
이에 따라 당장 올해와 내년 예산에서 KTF를 통해 재원 조달이 예정됐던 사업은 모두 취소될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독일 재무부는 헌재 결정 이후 전 부처에 신규 지출 전면 중단을 요청하고 KTF는 물론 에너지 가격 급등 대응 용도인 경제안정기금(WSF)을 통한 신규 지출도 일제히 유보했다.
아울러 올해 예산과 관련해 사후적으로 부채제동장치 적용 제외를 의결하고, 위헌 결정을 반영해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 중이다.
최소 86조원이 비게 돼 예산 삭감이 불가피해지면서 독일 각 부처와 16개 주정부, 기업 등에서는 그 배분을 둘러싼 다툼이 불가피하게 됐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보호부 장관은 이는 민주주의를 위한 스트레스테스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산 대란으로 인한 타격은 모든 가계에까지 도달할 전망이다.
독일 정부는 전날 당초 내년 3월까지였던 급등한 에너지 가격으로 고통받는 가계를 위한 가스·전기요금 지원을 올해 연말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전력·가스보급망에 대한 지원금까지 삭감될 경우 전 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독일 언론은 내다봤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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