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라임, 옵티머스, DLF(파생결합펀드) 등 고위험 파생금융상품 사태로 몇차례 홍역을 치른 금융권에 또다시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 이번엔 홍콩발 시한폭탄이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가 반토막이 나면서 이에 기초한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에서 막대한 원금 손실 가능성이 가시화하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내년 상반기 만기 도래하는 관련 상품 규모만 8조4천억원으로, 현재 지수 수준을 유지한다면 손실액이 수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한 금융당국도 부랴부랴 전수 실태조사에 나섰다.
ELS는 기초자산이 되는 지수가 통상 3년인 만기까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약속한 수익률을 지급하지만, 급락한다고 가정하면 이론상 100% 손실이 날 수 있도록 설계된 고위험 상품이다. 이번 ELS 상품이 집중적으로 판매된 2021년 초 홍콩H지수는 12,000포인트를 돌파하면서 고공행진을 지속하는 듯했으나, 이후 줄곧 하락해 현재 6,000포인트 초반에 머무르고 있다. 이 상품은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됐는데, 살아나리라던 중국 경제가 예상과 달리 침체 국면을 이어가면서 해당 금융상품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금융권은 H지수가 지금 수준에서 횡보한다면 손실 규모가 3조원 안팎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라임펀드 피해액(1조6천억원)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현재 중국 경기로 미뤄 반등을 점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논란의 핵심은 역시 '불완전 판매' 여부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가입자들에게 원금 손실 가능성, 지수의 큰 변동성 등 상품의 고위험성을 충분히 알리고 동의를 구했는지가 관건이다. 벌써 "원금이 보장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받았다"라거나,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투자자들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복잡한 상품 이해에 취약한 고령 투자자가 많다는 점도 앞선 사태와 유사하다. 금융사들은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에 따라 불완전 판매를 막기 위해 투자 위험을 충분히 설명·녹취하고, 가입 의사를 추가 확인하는 등 적법 절차를 거쳤다고 강조하지만, 악순환이 근절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판매 관행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당국은 은행 창구 직원들이 판매 과정에서 손실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지나치게 낙관적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는지 철저히 가려내 잘못이 있다면 응분의 조치를 해야 한다. 또 ELS의 약 80%가 '비대면 채널'로 이뤄지는 증권업계의 판매 경로도 세심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경제ㆍ금융시장의 글로벌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무엇보다 투자자들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을 되뇌면서 일확천금의 유혹에 빠지면 고위험성을 간과하기 쉽다. 수익률만 좇아 귀한 원금까지 까먹을 수 있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며 그 결과는 일차적으로 자기 책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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