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는 비확산 문제로 인식, 최근엔 미국과 대결이슈화
상임이사국 책임 강조하며 중·러 태도변화 견인 과제
(서울=연합뉴스) 이우탁 기자 =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에 서방이 과도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에서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러시아 주유엔 차석대사인 안나 에브스티그니바가 한 발언이다.
북한의 군사정찰 위성 발사가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에 해당돼 이를 규탄하기 위해 열린 회의에서 오히려 북한을 두둔한 것이다.
중국도 러시아와 행보를 같이했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어떤 국가도 자국의 안보를 위해 다른 나라의 자위권을 희생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아예 북한의 정찰위성 발사를 정당화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이런 모습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국제 비확산 체제에 대한 중대한 도전과 위협으로 인식한 과거와 달라진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데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악화하는 등 국제질서의 변화 속에 북한 문제의 성격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남은 동맹인 북한을 옹호해야 하는 상황이다.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중국에게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북한의 무기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7월13일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도 이런 모습이 연출됐다. 당시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 18형 발사 도발을 응징하기 위해 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에서 장쥔 주유엔 중국대사는 "미국의 압박으로 북한은 어마어마한 안보와 생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미국을 겨냥했고, 안나 에브스티그니바 러시아 차석대사는 "러시아는 한반도와 동북아 안보를 위협하는 어떠한 군사 활동도 반대한다"고 했다.
과거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면서도 핵·미사일 도발에 있어서는 미국과 보조를 같이했다.
2006년 7월과 10월의 북한의 미사일과 1차 핵실험 도발 직후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안이 나온 것은 물론이다.
특히 2017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도발 이후 안보리가 그해 3월 채택한 대북 제재결의안 2270호는 희토류 수출 전면 금지 등 북한에 의미 있는 타격을 주는 내용이 담겼다.
아울러 같은 해 9월 북한이 다시 5차 핵실험(증폭분열 핵탄두실험)을 하자 유엔 안보리는 11월 제재 결의안 2321호를 채택했는데, 석탄 수출량을 4억달러 수준으로 동결하고 유엔 회원국들의 북한 내 선박 등록을 금지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2016년 이후 도출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는 그 이전과 비교할 때 북한이 느끼는 타격은 차원이 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핵·미사일 개발에 소요되는 자금줄을 차단할 뿐 아니라 북한 최고 수뇌부를 압박하는 제재였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2017년 11월 북한의 ICBM 화성 15호 도발 당시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제재결의안 2397호는 대북 정유 제품 공급 제한을 연간 50만 배럴로 하향하는 강력한 조치였다. 이 결의는 북한이 현재까지 힘들어하는 조치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오히려 27일 안보리 회의에서 중국과 러시아 대표들의 발언은 갈수록 '북한 옹호'가 강화되는 양상임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대사가 "2개의 상임이사국이 북한의 위험한 행동에 대한 안보리의 대처에 함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중러의 태도 변화는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기류다.
이날 회의에서 김 성 주유엔 북한대사가 "그럼 미국은 위성을 쏠 때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하지 않고 투석기로 위성을 날리느냐"고 억지를 부리는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인 것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뒤에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미중 패권 경쟁 시대의 달라진 유엔 안보리 회의 모습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고도의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가 "북한의 도발적 행동은 지역적 문제가 아닌 글로벌 문제"라며 "북한에 대한 규탄과 안보리의 단결을 촉구한다"고 호소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읽힌다.
lw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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