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연구소 이원영 박사 "하루 1만 번 이상 4초짜리 쪽잠 자며 새끼 보호"
(서울=연합뉴스) 이주영 기자 = 몇초간 쪽잠을 자는 미세수면(microsleep)이 쌓이면 오래 자는 효과가 있을까? 남극에 사는 턱끈펭귄(chinstrap penguin)은 번식기에 평균 4초간의 미세수면으로만 하루 11시간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턱끈펭귄에 뇌파(EEG) 측정기, 가속도계 등을 부착해 밝혀낸 이 사실은 미세수면이 쌓이면 수면 효과도 누적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사람 등 동물마다 수면 형태가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진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극지연구소(KOPRI) 이원영 박사와 프랑스 리옹 신경과학 연구센터 폴-앙투안 리브렐 박사팀은 1일 과학 저널 사이언스(Science)에서 남극 턱끈펭귄은 하루 1만번 이상의 미세수면을 통해 매일 11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턱끈펭귄은 한 번에 긴 시간을 자지 않고 하루 수천번 조는 식으로 잠을 자는데, 한 번에 평균 4초 동안만 졸기 때문에 항상 깨어있는 것처럼 둥지에서 새끼의 안전을 살필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동물은 잠이 필요하지만 잠을 잘 때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주변 환경 감지 및 반응 능력이 떨어져 포식자의 공격에 취약해진다.
사람의 경우 수면이 부족하면 졸음, 몇 초간의 각성 중단, 수면 관련 뇌 활동 중단 같은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운전 중 이런 미세수면이 발생하면 졸음운전 사고 등으로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연구팀은 다양한 동물에서 미세수면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미세수면이 긴 수면과 동일한 정신적, 신체적 회복 기능을 하는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이 연구에서 남극 킹조지섬에 있는 턱끈펭귄 번식지에서 19마리의 몸에 뇌파(EEG) 측정기, 가속도계, GPS, 잠수기록계 등이 들어 있는 장치를 부착한 다음 2주 후 14마리에서 장치를 회수해 분석했다.
턱끈펭귄들은 번식기에 파트너가 며칠 동안 바다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경우 홀로 둥지에 남아 포식자 새와 침입하는 다른 펭귄으로부터 새끼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장시간 잠을 자면 둥지와 새끼가 위험해질 수 있다.
2주 동안 측정된 뇌파와 움직임 등을 분석한 결과 턱끈펭귄들은 장시간 잠을 자지 않는 대신 자주 매우 짧은 잠을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잠은 평균 지속시간이 4초에 불과한 미세수면이었고, 그 회수는 하루 1만회 이상으로 총 수면시간은 하루 11시간이 넘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원영 박사는 "사람은 깊은 잠을 의미하는 '느린 뇌파 수면'(서파수면)에 접어드는 데 오래 걸리지만 턱끈펭귄들은 단 몇초의 미세수면에서도 순식간에 서파수면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런 미세수면이 누적돼 장기간 잠을 자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면 동물 종들이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한 생태환경에 적응하는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 연구 결과는 턱끈펭귄들이 번식에 성공을 거두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미세수면의 이점은 점진적으로 축적될 수 있고 이런 미세수면이 장시간 수면의 이점 중 적어도 일부는 충족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턱끈펭귄은 포식 위협이 큰 번식지에서 집단 번식을 하기 때문에 항상 경계할 수 있게 수면이 파편화되는 식으로 진화한 것 같다"며 "이런 미세수면이 다양한 동물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흥미로운 연구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출처 : Science, Won Young Lee et al., 'Nesting chinstrap penguins accrue large quantities of sleep through seconds-long microsleeps', http://dx.doi.org/10.1126/science.adh0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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