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동거는 행동주의펀드…내년 주총시즌 앞두고 행보 주목

입력 2023-12-10 07:11  

다시 시동거는 행동주의펀드…내년 주총시즌 앞두고 행보 주목
올해는 '찻잔 속 태풍' 그쳤지만 갈수록 명분 강화·저변 확대
일각선 '적대적 M&A' 논란…"저평가 방치한 최대주주 책임"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내년 초 상장법인의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확대를 요구하는 행동주의펀드들의 움직임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이사회 멤버 구성을 통한 경영 참여부터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안건을 주총장으로 가져온 행동주의펀드들이 내년 주총에서 더 분주히 움직일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한국앤컴퍼니[000240]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는 MBK파트너스 같은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도 행동주의펀드와 유사한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주주행동주의의 저변이 확대될수록 관련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 올해 정기주총선 패했지만…'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정기주주총회에서 행동주의펀드들은 소액주주와 합심해 표 대결을 펼쳤지만 대부분 고배를 마시며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트러스톤자산운용(태광산업·BYC),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JB금융지주),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안다자산운용(KT&G), 밸류파트너스자산운용(KISCO홀딩스) 등 행동주의펀드들이 제출한 주주제안은 정기주총에서 줄줄이 부결됐다.
행동주의펀드들은 그러나 이후에도 지배구조 개선을 끈질기게 요구했고, 일부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는 이달 초 KT&G를 상대로 사장 후보 선임 절차를 개선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FCP는 올해 9년째인 백복인호(號) KT&G에 대해 "매출은 40% 성장한 반면 영업이익은 오히려 17% 감소하며 동종업계와 영업마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는 박한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 차기 사장 후보 검증 기간을 충분히 갖고 외부에 후보 자격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후 KT&G는 차기 사장 후보자 선정 과정에서 연임 의사를 밝힌 현직 사장을 다른 후보자에 우선해 심사할 수 있는 조항을 삭제하고, 사장 선임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엘리베이터[017800]를 상대로 지배구조 개선 등을 요구해온 KCGI자산운용도 목표를 일부 달성했다.
KCGI운용은 최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등기이사와 이사회 의장직을 사임한 것을 두고 "이사회 정상화의 첫 단추"라고 평가하면서도, 경영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정상화, 자사주 전량 소각 등을 요구했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태광산업과의 표 대결에서는 패했으나 태광산업[003240]이 지난달부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의 일환으로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가동하겠다고 밝히자 환영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달 중순께는 행동주의 활동을 통해 주주가치 확대가 예상되는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할 예정이다.
상법상 주주제안은 주주총회 개최일 6주 전까지 서면으로 제출해야 하는 만큼, 연말연초로 갈수록 행동주의펀드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행동주의펀드들의 타깃 기업 지분율은 대개 한자릿수에 머물기 때문에 소액주주를 우군으로 만들기 위한 여론 환기 캠페인이 필수적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주주총회의 주요 안건들은 대부분 기업 지배구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주총은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라며 "주주행동주의를 펼치는 대다수는 1∼2% 지분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주주들을 같은 편으로 만들었을 때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 경영 참여형 PEF도 "기업가치 제고"…주주행동주의 저변 확대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올해 MBK파트너스가 오스템임플란트와 한국앤컴퍼니 등 기업의 지분 매입을 시도할 때마다 내세운 건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라는 명분이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대규모 횡령 사태 당시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아 주식 거래정지가 되는 위기를 겪었고, 한국앤컴퍼니는 조현범 회장이 계열사 부당지원과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을 인수하면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현재 한국앤컴퍼니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5배 수준으로, 주가가 기업 장부가치보다 낮은 저평가 상태다.
MBK파트너스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경영권 확보를 최종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기업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행동주의와는 결이 다르다.
다만 소액주주들에게 기업가치 제고라는 '당근'을 꺼내 든 것을 보면 행동주의펀드들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9월 말 기준 소액주주들은 한국앤컴퍼니 지분 23.75%를 보유하고 있어 이들이 얼마나 공개매수에 응하느냐가 한국앤컴퍼니 경영권의 향방을 결정짓는다.
한 행동주의펀드 고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의 이번 공개매수에 대해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이 얼어붙어 투자 대상 기업이 거의 없다보니 MBK파트너스 같은 PEF도 주주행동주의를 투자기법의 하나로 선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기업가치 제고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우고, 소액주주에게 프리미엄을 나눠주는 공개매수 방식을 택한 전략이 절묘하다"고 평가했다.

◇ '적대적 M&A' 비판 제기 속 '저평가 방치 최대주주 책임" 지적도
금융투자업계 일각에서는 '적대적 M&A' 논란을 제기하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오스템임플란트를 공개매수할 당시에는 최규옥 전 회장의 지분 9%가량을 인수하고 최 전 회장과 경영권 인수를 위한 논의를 진행했으나, 이번 공개매수는 최대주주인 조 회장 측의 동의 없이 진행되고 있다.
이에 한국앤컴퍼니와 한국타이어는 MBK파트너스가 조현식 고문 측과 손잡고 주식 공개매수에 나선 것을 '적대적 M&A' 시도로 보고 방어하겠다는 입장이다.
주주행동주의가 경영권 분쟁으로 격화한 사례는 올해 초에도 있었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한 주주행동주의는 SM엔터 대주주였던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반발을 낳으며 하이브[352820]와 카카오[035720] 간 경영권 분쟁으로 번졌다.
사모펀드가 기업 경영권을 인수한 뒤 지나치게 단기 차익 얻기에만 골몰하고, 경영권 불안을 자극해 기업의 비용 부담을 키운다는 것도 으레 따라붙는 지적이다.
그러나 적대적 M&A 자체가 불법행위가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인 만큼, 공격의 빌미를 허용한 최대주주와 경영진에 그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
코스피 평균 PBR이 1 미만으로 떨어진 상태가 계속되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는 주주환원에 인색하고 기업가치 제고를 게을리한 최대주주 때문이고,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기업 오너들이 더욱 주주 친화 경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규식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기업 가치가 '반토막'이 나 있다면 그 자체로 적대적 인수에 노출되는 상황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 해소에 아주 결정적인 시그널이 나왔다"며 "MBK파트너스의 한국앤컴퍼니 인수 시도는 심화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자본시장의 선언과도 같다"고 말했다.
nor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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