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10년 내 '화석연료 멀어지는 전환' 개시 필요성 강조
회원국 만장일치가 최종 관문…산유국 등 동의 여부 주목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황철환 기자 =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의 새 합의문 초안에 2050년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목표로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시작한다는 문구가 포함됐다.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올해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는 13일(현지시간)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세 번째 합의문 초안을 작성해 당사국들에 공유했다.
새 합의문 초안은 100개 이상 당사국이 요구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대신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을 당사국들에 촉구했다.
구체적으로는 2050년까지 넷제로를 달성하기 위해 "향후 10년 이내에 공정하고 정돈된, 공평한 방식으로 에너지 체계에서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을 개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새 초안에서도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3배로 늘리고 배출가스 저감이 미비한(unabated) 석탄 화력발전소를 신속히 폐기하고 신규 허가를 제한한다는 내용 등은 그대로 유지됐다.
대기에서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를 포집해 지하나 해저에 저장하는 '탄소포집 및 저장' 기술 개발을 가속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산유국들이 보여온 반발을 의식한 듯 21쪽 분량으로 작성된 이번 초안에서 '화석연료'(fossil fuels)란 용어는 단 두 차례만 쓰였고, '석유'(oil)란 단어는 아예 쓰이지 않았다고 AP 통신은 짚었다.
합의문안이 이대로 채택된다면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첫 총회가 열린 이후 거의 30년 만에 처음으로 회원국들이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한 공동의 움직임에 합의한 것이 된다.
전세계 에너지에서 이러한 화석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80%에 이르지만, 과학계는 화석연료 사용시 배출되는 온실가스가 기후변화의 주범이라고 경고해 왔다.
에스펜 바르트 에이데 노르웨이 기후환경장관은 "세계가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 필요성에 대해 이처럼 명확한 문서로 하나가 된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새 초안을 평가했다.
그러나 세계자연기금(WWF)의 기후변화 전문가 스테판 코넬리우스 박사는 새 초안이 "기존 버전보다 화석연료에 대한 표현이 크게 개선됐으나 석탄·석유·가스의 단계적 퇴출을 촉구하는 데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생물다양성센터의 진 수 에너지정의국장은 "전반적으로 볼 때 승리이지만 세부사항에 심각한 흠결이 있다"면서 화석연료 생산국들은 곳곳에 산재한 허점을 악용해 계속 생산량을 확대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새 초안이 회원국의 만장일치 합의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할 수 있을지도 아직은 불투명하다.
COP28은 화석연료 퇴출을 둘러싸고 산유국·저개발국과 유럽연합(EU)·일부 선진국 사이의 견해 차이가 좁혀지지 않아 폐막일인 12일까지 최종 합의문을 내지 못했다.
하이탐 알가이스 석유수출기구(OPEC) 사무총장은 지난 6일 OPEC 회원국과 일부 COP28 회원국들에 보낸 서한에서 화석연료 자체를 퇴출하기보다는 온실가스 감축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석유를 겨냥한 어떠한 합의에도 반대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세계 석유매장량의 거의 80%를 보유한 OPEC 국가들은 석유 판매로 얻는 수익에 크게 의존하는 까닭에 서방 선진국이 주도하는 화석연료 퇴출 움직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들은 탄소포집 등 기술을 활용하면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COP28에서 진행 중인 협상에 참여한 인사들은 화석연료 퇴출 반대 진영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건 사우디이지만, 이란과 이라크, 러시아 등도 마찬가지 입장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런 정황을 고려할 때 새 초안에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란 표현 대신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란 표현이 삽입된 건 극단으로 치달을 조짐을 보이는 갈등을 무마하기 위한 일종의 타협점일 가능성이 점쳐진다.
앞서 COP28 의장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작성해 11일 공유했던 기존 초안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다양한 선택지만 제안하고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이란 문구가 빠져 거센 논란이 일었다.
서방 선진국과 기후변화에 취약한 섬나라 등 100여개국은 합의문에 어떤 형태로든 화석연료의 퇴출을 의미하는 문구를 삽입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 산유국들은 '단계적 퇴출'이란 표현에 반대하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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