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금 스캔들·10%대 지지율에 집권당서 "정권 말기" 언급 나와…'땜질 개각'도 뭇매
야당 "사퇴 진지하게 고민해야"…잠룡들, 일제히 "당 개혁해야" 강경 발언으로 존재감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비자금 스캔들'에 휘말린 집권 자민당 최대 파벌 '아베파' 각료들을 모두 경질했지만, 여당과 야당 모두 부정적 평가를 했다고 현지 언론이 15일 보도했다.
비자금 후폭풍으로 일부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이 17%를 기록, 처음으로 10%대로 내려오면서 정권 퇴진 위기감이 더욱 커지는 가운데, 차기 총리로 거명되는 중량급 인사들이 '몸풀기'에 나서는 듯한 양상이다.
◇ 집권당 내에서도 "정권 말기" 언급 나와…"정권 지탱하려는 사람들 줄고 있어"
기시다 총리는 전날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는 아베파 소속 각료 4명을 각료 경험이 있는 비(非) 아베파·무파벌 인사로 교체했다.
정부 대변인이자 '내각 2인자'인 관방장관에는 지난 9월 대규모 개각에서 전격적으로 교체된 하야시 요시마사 전 외무상이 기용됐다. 하야시 장관은 기시다 총리가 이끌던 파벌인 '기시다파' 좌장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외고손자인 마쓰모토 다케아키 총무상은 3개월 만에 같은 자리로 돌아왔고, 사이토 겐 경제산업상도 9월 개각 전까지 법무상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전 개각에서 교체했던 인물들을 다시 불러들인 이 같은 '땜질 인사'에 대해 자민당 내부에서는 기대감보다 냉담한 기류가 확산하고 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특히 기시다 총리가 애초 1993년에 함께 국회에 입성한 하마다 야스카즈 전 방위상에게 관방장관직을 타진했지만, 하마다 전 방위상이 "능력이 없다"며 고사했다는 사실에 현지 언론은 주목했다.
'정권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 인사가 기시다 총리 뜻대로 풀리지 않은 것은 2012년 자민당 재집권 이후 '퇴진 위기' 수준의 최저 지지율을 연일 경신하는 기시다 정권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하마다 전 방위상뿐만 아니라 무파벌인 아다치 마사시 의원이 외무성 부대신을 맡아 달라는 요청에 난색을 보인 것도 기시다 총리의 구심력이 약화한 사례라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자민당의 한 각료 경험자는 "진심으로 정권을 지탱하려는 사람이 줄고 있다"며 "정권 말기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은 전했다.
자민당의 또 다른 중진급 인사는 기시다 정권을 침몰해 가는 '진흙 배'에 비유하면서 "함께 가라앉고 싶지 않은 것 아닌가"라고 발언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직자는 아베파 각료 교체에 대해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기시다 총리가) 사퇴해서 정권을 물려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 후지타 후미타케 간사장도 "아베파만으로 문제를 덮으려는 의도라면 이상하다"며 "(아베파) 추방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 "아베파 축출로 아소 영향력 강해져"…차기 총리 '1순위' 이시바, 연일 강경 발언
기시다 총리가 이번 개각에서 자민당 내 두 번째 파벌 수장인 아소 다로 자민당 부총재에게 더욱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견해도 제기됐다.
최대 파벌인 아베파는 각료와 차관급인 부대신을 축출하면서 거리가 멀어졌고, 아소파와 함께 기시다 정권을 뒷받침해 온 세 번째 파벌 수장인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차기 총리 후보이자 기시다 총리의 잠재적 경쟁자로 평가된다.
전직 총리이자 80대 고령인 아소 부총재는 기시다 총리를 위협할 가능성이 거의 없고, 정치적 영향력도 강해 기시다 총리가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아사히신문은 짚었다.
이 신문은 "기시다 총리는 비자금 의혹을 계기로 인사를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아소 부총재를 공저에 불렀다"며 기시다 총리가 하마다 전 방위상을 관방장관에 기용하고자 한 것도 아소 부총재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기시다 총리가 아베파를 정부 고위직에서 제외하면서 아소 부총재를 비롯한 다른 파벌 수장을 배려하는 듯한 보였다고 분석했다.
이어 자민당 내에서 기시다 총리를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은 아직 두드러지지 않지만, 한편에서 "기시다 총리로는 차기 중의원(하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포스트 기시다' 후보로 언급되는 자민당 잠룡들도 조금씩 공개 행보에 나서는 모양새다.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후보 1위로 꼽힌 바 있는 이시바 시게루 의원은 지난 11일 자민당 비자금 의혹과 관련해 내년 봄 기시다 총리 퇴진을 언급한 데 이어 전날에는 자민당 회의에서 당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시다 총리가 이달 13일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체질을 일신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이를 구체화할 조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아들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큰 불신이 자민당을 향하고 있다"며 "당 전체 문제라는 인식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총리와 경쟁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은 이미 지난달 공부 모임을 설립해 세력 결집을 도모하고 있다.
한편, 도쿄지검 특수부는 아베파 회계 책임자 입건을 검토하고, 아베파 간부를 포함한 복수의 의원을 상대로 조사를 요청하는 등 자민당 비자금 의혹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수사를 통해 비자금 파문이 확산하면 기시다 정권의 지지율은 추가로 하락하고, 퇴진 압
박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발표된 지지통신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내각 지지율은 17.1%로 추락하며 처음으로 10%대로 내려앉았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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