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직원들 "고객 항의 무시하란 건지" "해고·소송도 없는데"…노조도 반발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고객과 개발자 간 소통을 강점으로 앞세운 게임 업계가 지난달 불거진 '남성혐오 손 모양' 사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뿌리'(이하 뿌리)가 넥슨 등 여러 게임사에 납품한 홍보 영상을 두고 일부 네티즌이 "남성 혐오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상징하는 집게 손 모양이 들어갔다"는 취지의 의혹을 제기하면서다.
일부 시민단체는 이런 이용자들의 항의가 억지 주장이며, 게임사가 의혹이 제기된 홍보 영상을 비공개 처리한 것이 '혐오 동조'라며 연일 소셜미디어와 언론 매체를 통해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정작 게임 업계에서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공감은 거의 얻지 못하며 갈등의 골만 깊어지는 모양새다.
한국여성민우회, 시민단체연대회의, 민주노총 등은 지난달 28일 경기 성남시 넥슨코리아 사옥 앞을 찾아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넥슨이 "억지 논란에 굴복했다"며 "시대착오적이고 반민주적인 혐오 몰이에 동조를 멈추고 엎드려 사죄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주말에 출근해 밤새 문제의 영상을 검수하고, 당일까지도 대응 방안을 논의한 넥슨 직원들을 중심으로는 억울하다는 반응이 터져 나왔다.
국내 게임업계 1호 노동조합인 민주노총 화섬노조 산하 넥슨지회는 곧바로 조합원 공지를 통해 "콘텐츠 검수는 일의 영역이고, 의도를 가졌느냐 그렇지 않으냐를 떠나 이용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수정하려는 노력은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을 향해 "우리와 어떠한 논의도, 사안에 대한 이해도 없이 기자회견을 진행했다"며 탈퇴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게임 산업 노조와 노동자들의 이같은 반발에도 시민단체들은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어 게임 업계가 '사상검증'에 나서고 있다며, 넥슨에 공식 입장을 내놓으라며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취재를 위해 만난 게임 업계 관계자들은 시민단체가 게임사를 '표적'으로 삼아 과도한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입을 모아 비판한다.
판교의 게임 개발자 A씨는 "넥슨이 누군가를 해고한 것도, 신상을 털거나 뿌리에 손해배상을 물은 것도 아닌데 혐오에 동조했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객들이 상품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불쾌감을 표출하는데 기업이 애써 무시해야 한다는 거냐"고 되물었다.
유통 업계 출신의 게임사 직원 B씨는 "과거 한 편의점 브랜드 홍보물에서도 비슷한 '손가락'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사과와 함께 이미지를 교체했다. 그렇지만 기업이 극단적 주장에 동조했다는 주장까진 안 나왔다"며 "게임 업계를 어떻게 보길래 그런 논리를 당당히 펴는지 개탄스럽다"고 반발했다.
게임 기획자 출신의 중견 게임사 임원은 "게임은 다른 소비재와 달리 사소한 이슈에도 이용자가 대거 빠질 수 있다. 넥슨도 그 위험성을 고려해 굳이 어느 쪽을 편들지 않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사람에 따라 아쉬움을 느낄 순 있겠지만, 게임사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단체는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거듭되는 '남성혐오', '여성혐오' 논란에 피로감을 느끼는 게이머들은 게임산업에 대한 혐오 몰이를 선행으로 맞대응하자며 릴레이 기부를 이어가고 있다.
네티즌들은 이달 초부터 넥슨이 발달장애 어린이를 위해 2016년 개원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온라인 커뮤니티에 릴레이 인증 글을 올리며 성원을 전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자체 집계한 누적 기부금만 해도 수억원대가 모였다. 병원 홈페이지는 한때 접속자 폭주로 마비되기도 했다.
게임산업을 더 높은 곳으로 밀어올릴 추진력은 갈등과 시위가 아니라, 혐오 없는 즐거운 게임 세상을 만들려는 개발자와 성숙한 게이머의 열정 속에 있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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