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도 "홍콩인으로서 역사적 순간 목도하러 와" "저항의 작은 실천" 목소리
(홍콩=연합뉴스) 윤고은 특파원 = "홍콩인으로서 나는 이 재판을 목도하러 왔습니다. 그가 질 것을 알고 있음에도요."(졸리 청)
"여기 오기로 선택한 것은 일종의 저항의 작은 실천입니다."(앤디 성)
홍콩 반중매체 빈과일보의 사주 지미 라이(76)의 국가보안법 재판이 18일 홍콩 서구룡 법원에서 시작된 가운데 이날 재판 방청객 중 홍콩인 졸리 청(29) 씨와 앤디 성(40대) 씨가 AP 통신에 이같은 소감을 밝혔다.
또 방청객 중 60대의 웡모 씨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우리는 홍콩인들을 지지해야 한다. 나는 그가 잘못 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본토 출신 한 대학생은 홍콩프리프레스(HKFP)에 엑스(구 트위터)에서 라이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재판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 왔다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발언으로 형을 선고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SCMP는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라이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이날 법원으로 모여들었다고 전했다.
그중에는 홍콩 주재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스위스, 캐나다 총영사관 대표들과 천주교 홍콩교구장을 지낸 조지프 쩐(91) 추기경 등도 있었다.
쩐 추기경은 홍콩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612 인도주의지원기금'의 신탁관리자라는 이유로 지난해 5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었다.
이날 오전 8시께 법원에 도착한 라이는 쩐 추기경을 보자 미소를 지었다.
라이의 재판은 2020년 6월 30일 시행된 홍콩국가보안법 관련 재판 중 국제사회의 관심이 가장 집중된 사례다. 라이가 홍콩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홍콩과 중국 당국은 라이가 빈과일보를 이용해 홍콩과 중국 정부에 대한 비방을 일삼고 외국 세력의 내정 개입을 모색했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면서 그가 외세와 결탁해 홍콩과 중국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끌어내려 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홍콩국가보안법은 국가 분열, 국가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한다.
라이와 함께 다른 빈과일보 간부 6명도 외세와 결탁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이들은 앞서 지난해 11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유죄를 인정한 빈과일보 간부 6명의 형량 선고는 라이의 재판 결과가 나온 후 이뤄질 예정이다. 해당 6명 중 일부는 이번 라이의 재판에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선다.
라이의 재판은 외국인 변호사 선임 문제로 1년여 연기된 뒤 이날 열렸다.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는 그간 외국인 변호사가 활발히 활동해왔고 중대 범죄에 대해 공개된 배심원 재판을 진행해왔다. 이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이 법과 관련된 사건은 배심원 없이 진행되고 판사는 행정장관이 지명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홍콩 정부는 라이가 국가보안법 사건에 외국인 변호사를 선임하자 홍콩과 중국 내정에 대한 외국의 간섭 사례가 많았다면서 "국가보안법 사건에는 외국인 변호사의 참여를 금지해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
국가보안법 시행 후 빈과일보를 시작으로 입장신문, 시티즌뉴스, 팩트와이어 등 홍콩 민주 진영 언론이 당국의 압박 속에 잇달아 폐간한 가운데 국경없는기자회(RSF)가 지난 5월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 지수'에서 홍콩은 전 세계 180개 국가 중 140위를 차지했다.
2019년 73위였으나 국가보안법 제정 후 급격히 추락했다.
RSF는 홍콩이 표현의 자유에서 전례 없는 퇴보를 경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는 라이의 석방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그에게 여러 언론의 자유 상을 수여했다.이달 초 프랑스 리옹시는 언론의 자유를 위한 라이의 투쟁을 기려 그에게 명예시민증을 부여했다고 SCMP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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