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 이노폴리스포럼서 정부 인사로는 처음 R&D 카르텔 실체 언급
원자력연 사용후핵원료 연구·연구재단 등 카르텔로 지목
(서울=연합뉴스) 조승한 기자 = 조성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이 특정 연구와 기관 사례를 들어가며 이른바 '과학기술계 카르텔'을 콕 집어 언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인사가 과학기술계 카르텔 사례를 구체적으로 지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과기정통부는 과학기술계를 카르텔로 지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20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조 차관은 지난 12일 대전 유성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제74회 대덕이노폴리스포럼'에 참석해 카르텔의 정의와 구체적 사례 8가지를 발표했다.
조 차관은 우선 정부출연연구기관이 기업체에 사업을 주고, 사업 일부를 출연연이 지정한 교수에게 주는 편법을 카르텔로 꼽았다.
출연연이 직접 특정 교수에게 과제를 주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그는 부연했다.
또 출연연이 해당 기관 출신 교수들에게 특혜 제공을 위해 과제를 주는 경우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다고 그는 지목했다.
출연연이 수년간 내용은 같으면서도 제목만 바꿔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를 언급하면서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용후 핵원료 분야"라고 콕 집어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다른 출연연이 오인할 수 있어 기관 이름을 일부러 밝혔다고도 말했다.
기술 이전에서는 기술 가치 평가 이전에 이전료 협상을 한 후 일부 금액을 개인적으로 지원받는 경우를 꼽았다.
또 뿌려주기식 용역이 확대돼 연구 여력이 없는 교수들에게 연구비를 지급하고 있다며 이를 수행할 대학생이 없어 중국, 동남아 학생을 참여연구원으로 활용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런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무단 포기하고 불법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빈번한데도 실태 조사조차 없다는 게 조 차관의 지적이다.
또 예비타당성조사 기획이나 보고서를 쓸 수 없는 역량 없는 중소기업을 브로커가 대행해주고 성공보수를 받는 경우도 지목했다.
국가의 연구관리 전문기관인 한국연구재단도 카르텔로 지목했다.
그는 연구재단에서 과제 기획을 할 때 특정 분야나 특정 기술을 연구하는 집단의 수요를 받아 과제 제안서 자체를 해당 연구실만이 할 수 있도록 작성하는 경우가 있다고 짚었다.
또 선정 평가를 할 때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입을 맞춰 평가 분위기를 한쪽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발표 자료에 대해 개인 의견일 뿐 과기정통부 공식 의견은 아니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부처 차관이 직접 특정 기관들을 지목하며 카르텔로 지적한 만큼 이들 기관을 향한 과기정통부의 압박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조 차관이 지목한 사용후 핵원료 연구는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사용후 핵연료에 적용하겠다고 언급한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 처리기술)을 지칭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 때문에 원자력계 일각에서는 과기정통부가 파이로프로세싱 연구 자체에 미온적인 태도를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날 행사에는 원로 과학자인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비롯해 전현직 정부출연연구기관장 등 과학기술계 인사 2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럼 패널로 참석한 이석훈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 명예회장은 "한국의 R&D 예산 배분 구조를 이해 못 한 상태에서 비슷한 것들을 꿰맞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명예회장은 "조 차관이 현장과 소통 없이 R&D 예산 삭감을 하면서 만나자고 만든 자리"라며 "과기정통부가 추진하겠다는 R&D 혁신에 대해 말로만 떠들지 말고 제대로 추진하라는 주문도 있었다"고 전했다.
shj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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