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위배 조항 있다 생각"…헌법 위에 개정안 제출·심사 요청
"프랑스, 항상 이민자 환영"…'극우 세력 결탁' 비판엔 "유권자 배신 안해"
북서부 렌에서 수백명 반대 시위…'법안 공포 말라' 촉구 여론도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전날 상원과 하원에서 가결된 이민법 개정안에 대해 "우리에게 필요한 방패"라고 옹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저녁 프랑스5 방송에 출연해 국회를 통과한 법안이 애초 정부안보다 강화됐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같이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민법은 정부의 것이 아니라 의원들과 타협의 산물"이라며 "이민법 타협은 프랑스가 원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불법 이민은 "국가로서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불법적으로 입국한 사람들을 돌려보낼 수 없는 상황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다만 국회에서 가결된 이민법 개정안에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조항들도 있다며 "우리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조항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안을 헌법위원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위원회는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곳으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 등이 헌법에 위배되는지를 심사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특히 외국인 유학생에게 보증금을 부과하는 안은 "좋은 생각이 아니다"라며 "전 세계의 인재와 학생들을 계속 유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프랑스의 강점 중 하나"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면서 "프랑스는 항상 이민자를 환영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가 이민법 개정을 밀어붙이기 위해 우파 공화당(LR), 극우 세력인 국민연합(RN)과 손을 잡은 것 아니냐는 좌파 진영 및 정부 일각의 비판에는 선을 그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 집권을 막기 위해 유권자들을 배신하지 않았다"며 "국민연합이 하는 일과 가장 반대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민법 개정안에 반발해 사의를 표한 오렐리앵 루소 보건부 장관의 결정을 "존중한다"면서 "모든 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국가에 유용한 법이라고 생각해 투표한 모든 다수파 의원에게 큰 존경심을 표한다"고 말했다.
전날 상원과 하원은 양원 합동위원회가 마련한 이민법 개정안 합의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프랑스로의 이민 문턱을 높이고 외국인에 대한 사회 보장 혜택 조건을 강화하며 불법 체류자나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의 추방 문턱은 낮춘 게 골자다.
정부안보다 훨씬 강화된 안이 채택되면서 좌파 진영과 정부 일각의 반발이 거세다.
좌파 인사가 주지사로 있는 32개 주와 사회당 소속 안 이달고 시장이 이끄는 파리시는 개정안 중 일부 조항은 법이 통과 돼도 따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날 하원 표결 과정에선 범여권 의원 27명이 반대표를 던지고 32명이 기권을 하는 등 내부 이견이 표출됐고, 루소 보건부 장관은 법안 통과에 반발해 이날 실제 사의를 표했다.
시민들의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이날 저녁 프랑스 북서부 렌에서는 수백명이 도심에 모여 이민법 반대 행진을 벌였고, '세계의 의사들'이란 비정부기구도 "이 법안은 낙인을 찍고, 차별하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고 개탄하며 마크롱 대통령이 법안을 공포하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방송에서 국내외 각종 현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는 우선 최근 '미스 프랑스 2024'에 뽑힌 여성의 짧은 머리 스타일이 비판 대상이 된 것에 대해 "머리가 짧다고 해서 사람들이 혐오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반응했다.
연일 성추문으로 지탄받는 프랑스 국민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에 대해선 "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 그는 위대한 배우이자 천재적 예술가이며 프랑스를 전 세계에 알린 인물"이라며 "그는 프랑스를 자랑스럽게 만든다"고 여론과 다소 동떨어진 입장을 피력했다.
이어 그가 받은 국가 최고 훈장 레지옹도뇌르 박탈을 위한 징계 절차가 시작될 예정이라는 소식에는 "레지옹도뇌르 훈장은 도덕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프랑스 정부가 도입을 검토중인 적극적 연명 치료 중단법에 대해선 "내년 2월 법안의 개요를 제시할 것"이라며 "우리는 불치병을 앓는 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숙고하고 의학적 감독을 받는 조건 하에서 존엄한 임종을 맞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대해선 "테러와 싸우는 것이 가자지구의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며 인도적 차원에서 휴전이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에는 "재정적 지원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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