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대 총기난사에 14명 사망…'사람 죽이고싶다' 대학원생 소행(종합3보)

입력 2023-12-22 12:09   수정 2023-12-22 12:53

체코대 총기난사에 14명 사망…'사람 죽이고싶다' 대학원생 소행(종합3보)
당국 "테러와 무관한 단독범행"…숨진 피의자 '총기난사 찬양'
앞서 다른 살인 정황도…정부, 23일 '국가 애도의 날' 선포
체코 등록총기만 100만정…유럽 주변국보다 총기규제 느슨한 편


(베를린·서울=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서혜림 기자 = 체코 프라하 한복판에 있는 명문 카렐대에서 21일(현지시간)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나 최소 14명이 숨지고 25명이 다쳤다.
다른 총기난사범을 동경해온 합법적 총기 소지자의 소행으로 전해진다. 총기규제 실패로 여겨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유럽도 총기 사건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르틴 본드라체크 경찰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카렐대에서 일어난 총격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면서 "부상이 심각한 이들도 있어 희생자 수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고 체코 CTK통신과 미국 CNN, 영국 가디언 등 현지언론·외신이 전했다.
이번 총격은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프라하의 대표적 명소인 카를교에서 불과 수백m 거리의 얀 팔라흐 광장에 있는 카렐대 철학부에서 발생했다.
사건 당시 철학부 건물 지붕에서 어두운 색 옷을 입은 채 총기를 들고 있는 한 남성의 모습이 포착됐다.
경찰 조사 결과, 총격범이 24세 남성으로, 카렐대 학생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은 사망한 총격범의 신체 훼손 정도가 심해 아직 신원이 공식 확인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텔레그래프 등은 총기난사범이 역사와 유럽학 학사학위를 받고 석사 과정에서 폴란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 다비트 코자크라고 보도했다.
코자크는 특히 자신의 일기장으로 삼은 텔레그램 채널에 사람을 죽이고 싶다며 대량살상에 집착하는 게시물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한 게시물에서는 "학교 총기 난사 후 자살하고 싶다"며 "언제나 (사람을) 죽이고 싶었다. 나는 언젠가 미치광이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2019년 자신이 졸업한 학교를 공격해 9명을 살해한 일나스 갈랴비예프(당시 19세)를 언급하며 찬양하기도 했다.
본드라체크 경찰총장은 총격범이 '끔찍한 부상'으로 사망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인지 경찰과 총격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총을 맞은 것인지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총격범이 해외의 총기난사 사건들에서 영감을 얻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범행 동기를 조사하고 있다.

비트 라쿠산 체코 내무장관은 "조사당국은 (이번 범행이)극단주의 이데올로기나 단체와 연관된 것으로 의심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공범이 있다는 단서 역시 현재로서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총격범이 이날 총기난사에 앞서 살인을 저지른 정황도 파악했다.
경찰에 따르면, 총격범은 이날 오후 프라하 외곽의 고향 마을을 떠나 프라하 시내로 향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밝혔다. 이후 그의 고향에서 55세인 그의 아버지가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총격범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총격범의 자택을 수색한 결과, 그가 지난 15일 프라하에서 한 남성과 그의 생후 2개월 딸도 살해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경찰은 밝혔다.
총격범은 총기 허가증을 소지하고 있었으며, 경찰은 이날도 그가 여러 자루의 총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날 총격범이 카렐대 특정 건물에 예정된 강의에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당 건물에 있던 이들을 대피시켰으나, 정작 총격은 다른 건물에서 발생했다.
목격자들은 사건 당시 현장이 혼란과 공포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사람들이 교실이나 도서관에 갇혀있다고 전했고, 일부 학생들은 학교에서 대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학생들은 교실 문을 잠그고 책상과 의자 등 물건을 문 쪽에 쌓아 바리케이드를 치기도 했다. 학생들이 건물 외벽 쪽에 몸을 숨긴 모습도 포착됐다.

1348년 설립된 카렐대는 유럽에서 오래된 대학 중 한 곳으로 재학생이 4만9천500명에 달한다. 이들 중 철학부 재학생은 8천명이다.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카렐대 철학부에서 발생한 사건에 충격을 받았다"면서 "총격 사건 희생자들의 유족과 친지들에 깊은 유감과 조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체코 정부는 총격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23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체코는 다른 EU 국가에 비해 비교적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편이다. 총기 면허를 취득하려면 건강 검진과 무기 숙련도 시험을 필수로 받아야 하지만, 범죄 기록은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통계에 따르면, 체코에서 30만 명 이상이 총기 허가증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 해 체코 정부에 등록된 총기는 100만 정에 육박했다고 CNN은 전했다.
앞서 2019년 12월에도 한 42세 남성이 체코 동부 오스트라바의 한 병원에서 총기를 난사해 6명이 사망한 바 있다.
2015년에는 한 남성이 체코 남동부 우헤르스키 브로트에서 총격으로 8명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보후슬라프 스보보다 프라하 시장은 체코 공영TV에 "우리는 항상 이런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며 "불행히도 우리의 세상이 변하고 있고 개인 총격범은 이곳에서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yulsi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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