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마스 지지 세력 서로 "너희 죽음은 가짜" 삿대질
진짜 죽음에 조작설 제기…"음모론이 신뢰·공감·화해 막는다"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지난 달 오피르 겐델만 이스라엘 총리실 대변인은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얼굴에 가짜 피 분장을 받는 아역 배우의 사진을 올린 뒤 "'팔리우드(Pallywood)'가 다시 발각됐다"고 적었다.
팔레스타인과 할리우드를 합친 '팔리우드'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겪는 모든 고통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자들이 쓰는 용어다.
그 즉시 소셜미디어(SNS)에 널리 퍼지며 조회수 수백만회를 기록한 이 사진은 사실 지난 10월 공개됐던 한 레바논 영화의 촬영 현장을 찍은 영상임이 드러났다.
현재 오피르 대변인은 해당 게시글을 삭제한 상태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에서 상대방의 피해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SNS상에서 급증하고 있다고 영국 BBC 방송이 2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의 참상을 부정하는 용어 '팔리우드'는 10월 이후 엑스에서 역대 가장 많은 양인 43만7천회 가량 언급됐다.
'팔리우드'는 앞서 2014년 이스라엘·가자 전쟁과 2021년 예루살렘 폭동 등 과거에도 제기됐던 음모론이지만, 이번 전쟁에서 특히 주목받고 있다.
BBC에 따르면 지난 몇 달 사이 엑스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서 '팔리우드' 용어를 사용한 게시글을 공유한 이들 중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정부 관리들과 유명인, 인기 블로거 등이 포함됐다.
이스라엘의 주요 매체도 나서서 이 같은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으나 대부분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휴전 종료 후 이스라엘이 가자 공격을 재개한 지난 1일, SNS에는 한 팔레스타인 엄마와 할아버지가 5개월 된 아기의 시신을 끌어안고 슬퍼하는 사진 한 장이 퍼졌다.
아기의 시신이 적나라하게 담긴 이 사진에 많은 음모론자들은 시신이 사실은 인형이라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일간지 예루살렘 포스트도 이 주장을 그대로 기사로 실었다.
그러나 해당 사진은 사후 경직이 온 실제 아기의 시신이었음이 드러났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해당 기사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고 엑스에 보도가 '거짓된 소식통에 근거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고 BBC는 전했다.
오피르 겐델만 대변인이 '팔리우드의 현장'이라고 주장한 영화를 직접 찍은 감독 마흐무드 람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음모론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BBC는 오피르 대변인에 이에 대해 묻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고 전했다.
하마스 지지 세력 사이에서도 이스라엘 측 민간인 피해가 거짓이라는 음모론이 퍼지고 있다.
10월 7일 벌어진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사실을 부인하며 이스라엘 측 사상자 수가 과장됐거나 심지어 해당 이스라엘인들이 하마스가 아닌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식의 가짜뉴스가 SNS 상에서 퍼지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지난 달에는 하마스 공격으로 부모를 잃은 16살 소년 로템 마티아스와 그 여동생의 인터뷰가 미국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일부 음모론자들은 이들 남매가 사실은 배우이며 카메라 앞에서 웃음을 참으며 부모의 죽음을 연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티아스 남매를 직접 인터뷰한 ABC 기자 제임스 롱맨은 이 같은 음모론을 반박하며 BBC에 당시 마티아스 남매의 이야기를 듣던 카메라맨과 의료진, 본인 모두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음모론은 전쟁 당사자들이 상대방의 고통은 인간적인 것이 아니라고 믿게 만들어 공감과 신뢰, 화해 시도를 무너뜨린다고 BBC는 지적했다.
전쟁 피해자를 돕는 자선 단체인 '팀 패리·조너선 볼 평화재단'의 해리엇 비커스는 BBC에 "가장 큰 위험은 신뢰와 공감의 침식"이라며 "음모론은 화해의 노력에 접근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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