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26일 올해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 분석 현황을 발표했다. 분석 대상 회사 중 총수 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회사의 비율은 16.6%(433개)로 나타났다. 총수 일가의 등재 회사 비율은 2019년부터 계속 감소하다가 올해 소폭 증가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총수 일가가 등기이사에 올라 있는 회사가 여전히 10곳 가운데 2곳이 채 안 되는 셈이다. 총수 일가가 이사회 구성원이 아닌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회사는 136개나 됐다. 등기 임원은 경영상 의사 결정에 따른 법적 책임을 지는 자리다. 그런 면에서 총수 일가가 경영상 책임은 회피하면서 각종 권한과 혜택을 챙기는 관행이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 중인 직위 중 절반이 넘는 57.5%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 소속이었다.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회사를 말한다. 총수 일가가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에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배당도 많이 받으면서도 등기 이사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사회 내 견제 기능을 해야 하는 사외이사들이 '거수기' 역할을 하는 경향은 올해도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비중은 51.5%로 작년(51.7%)보다 소폭 감소했고 이사회 상정 안건 중 원안 가결률은 99.3%로 지난해와 비슷했다.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은 전체의 0.7%인 55건에 불과했고, 그 가운데 사외이사가 반대한 건은 0.2%인 16건에 그쳤다. 사외이사가 안건마다 제동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수치로만 봐서도 '들러리' 역할만 했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힘들다. 그간 대기업들의 사외이사 선임 과정을 보면 여전히 권력기관 출신 인사들을 영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전문성이 기업 경영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현실에선 기업의 '바람막이' 기능을 해왔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상장사의 소수 주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상법에 도입된 소수주주권은 모두 36건이 행사됐는데 이것도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공정위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관련 현황을 지속적으로 공개해 자발적인 지배 구조 개선을 유도하겠다고 했다. 기업 스스로도 지배구조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는 한마디로 총수가 소수의 지분을 가지고 많은 계열사에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조에 기반한 오너체제 경영이 개발독재 시대에 과감한 투자 결정 등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을 이끈 측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복잡다단한 경영환경 속에서 합리적 의사결정 구조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는 글로벌 수준과 동떨어진다. 실질적 경영권을 행사하는 총수 일가가 책임경영 하는 모습은 국제적으로 기업의 신뢰도를 높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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