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진도 7' 강타한 이시키와현 시카마치 소학교에 220명 주민 피난
귀가했다 저녁엔 피난소로…기자에게도 "따뜻하게 먹으라" 주먹밥·된장국 건네
지진에 학교 기둥 시멘트 떨어지고 철근 드러나…여진에 잇달아 '쿵' 흔들리기도
(시카마치<일본>=연합뉴스) 박성진 특파원 = 새해 첫날인 지난 1일 규모 7.6의 강진이 일본 노토(能登)반도를 강타했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주민들의 연대 의식은 지진보다 더 강했다.
지진 발생 이틀이 지난 3일 오후 기자는 노토반도 중앙에 자리 잡은 이시카와현 시카마치(志賀町)의 피난소 가운데 한 곳인 도기소학교(초등학교)를 찾았다.
강진이 발생한 당일 일본 전국에서 가장 강한 '진도' 7이 유일하게 관측된 지역인 시카마치의 피난소에는 인근 마을 주민 220명가량이 1일부터 만 이틀간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공부하던 1층과 2층 총 10개 교실에는 지진을 피해 온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시카마치가 인구가 2만명도 안 되고 고령화가 심각한 시골 마을이라서 그런지 절반 이상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고령자들이었다.
가족들끼리 모인 곳이 있는가 하면 고령자 전용 공간도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고령자들은 삼삼오오 모여 TV에서 지진 뉴스를 보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강진에 수도는 끊겼으나 다행히 전기는 연결되면서 교실 안은 난방기가 가동돼 겨울인데도 훈훈했다.
강진에 집이 무너지거나 여진으로 불안해 좀 더 안전한 피난소를 찾은 주민들에게는 제대로 먹고 쉬는 게 가장 큰 일이었다.
주민들은 자신도 힘든 상황이지만 서로를 도우며 함께 어려움을 견디고 있었다.
이날 저녁 6시 반이 조금 넘자 주변 마을에 사는 부부가 전기밥솥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자 10여명의 여성이 달려들어 갓 지은 밥을 한 주먹씩 집어 비닐랩에 싸 뭉친 뒤 우메보시(일본식 매실장아찌)를 얹은 주먹밥을 순식간에 만들어 냈다.
전기밥솥 두 개에 밥을 지어 온 야마모토 씨 부부는 "우리는 비록 1일 하루만 피난소에 머물다 집에 돌아갔지만, 이곳에 있는 주민들이 모두 따듯한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해서 밥을 만들어 왔다"면서 "집에 쌀이 있고 전기도 있으니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이들은 집에 전기밥솥이 두 개밖에 없어서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끼니마다 두 차례 밥을 해서 오고 있다고 했다.
주민들은 주먹밥 한 개와 된장국을 한 그릇 배급받아 부족하지만 모두 따듯하게 배를 채웠다.
배급을 담당하고 있던 70대 여성은 기자에게도 "모두 받는 것이다. 따뜻하게 저녁을 먹으라"며 음식을 나눠주었다.
이날 오전부터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아 운전하고 취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터라, 약 12시간 만에 먹은 주먹밥과 된장국은 세상 어떤 음식보다 달았다.
자신이 더 힘든 상황에 있으면서 나눔을 주저하지 않는 이들의 마음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피난소 주민들은 식사는 그런대로 해결하고 있었지만, 화장실 문제로는 골치를 썩고 있었다.
단수로 용변을 본 뒤 물을 내릴 수 없어서 화장실 앞에는 양변기에 부을 물이 가득 담긴 물통이 여러 개 놓여 있었다.
모두 급수 트럭으로 실어 온 물이었다.
이 학교 교감인 다치나카 요시히데 씨는 "다행히 전기가 끊어지지 않아서 난방이나 TV 등은 문제가 없지만 1일 지진 발생 이후 만 이틀간 피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이 피곤해한다"고 전했다.
일부 주민들은 집에 돌아갔다가 여진에 대한 불안감에 저녁에는 다시 피난소를 찾고 있다고 했다.
공무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피난민인 후지이 히로코 씨는 "사흘째라서 피곤하다"면서 "특히나 시카마치에 고령자 인구가 많고 이곳에 피난도 많이 와 있는데 이들이 특히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실제 고령자들은 지친 듯 누워 있거나 전깃불이 켜져 있는데도 억지로 눈을 붙이고 있었다.
피난소로 사용하기 위해 내진 설계가 잘 돼 있는 학교도 이번 강진을 피하지는 못했다.
천장이 일부 무너지거나 건물 기둥에서 시멘트가 떨어져 굵은 철근이 드러나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날 많은 겨울비가 내리면서 지진으로 금이 간 건물 틈으로는 끊임없이 물방울이 떨어졌고 그 아래에는 물받이 들통이 놓여 있었다.
집보다는 좀 더 안전한 학교에 있다고는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여진은 피난소 주민들을 계속 괴롭혔다.
노토반도에 살면서 지진을 수도 없이 겪었을 이들에게도 지진은 익숙해지지 않는 듯 보였다.
이날 노토반도를 잇달아 흔든 여진에 학교 건물은 수시로 '쿵'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연신 강하게 흔들렸고 주민들은 '아'라는 짧은 비명을 흘렸다.
취재를 마치며 '이들의 피난 생활이 언제 끝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sungjin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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