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채택 불발…"동물 학대" vs "서커스 산업 보호" 찬반 논쟁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러시아에서 동물의 서커스 출연 금지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고 러시아 일간 이즈베스티야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서커스는 세계적으로 사양하고 있지만 러시아에서는 그나마 인기와 명맥을 유지하는 편이다. 2022년 말 기준 러시아에는 68개의 서커스 공연단이 총 832마리의 동물을 보유하고 있다.
인간의 오락을 위해 서커스에 동물을 출연시키는 게 '학대'라는 목소리에 힘입어 러시아 정당 '새로운 사람들'은 지난해 10월 이를 완전히 금지해야 한다는 법안을 하원(국가두마)에 제출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동물은 잔인한 대우를 받으며 평생 끊임없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동물 권리 운동가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하원은 '시기상조'라며 법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하원 문화위원회는 이 법안이 서커스 산업과 서커스단에서 사육되는 동물 모두에 부정적 영향이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커스에서 가장 오래된 장르 중 하나인 '동물 훈련'이 사라질 수 있고 당장은 서커스단이 보유한 동물을 대신 맡을 시설이 부족하다는 점도 고려됐다.
러시아 국가 서커스단의 총책임자 세르게이 벨랴코프는 100년 이상 이어온 러시아의 서커스 동물 훈련을 보존해야 한다면서 "서커스 동물 공연은 동물원이 없는 도시에서 아이들이 희귀종을 볼 유일한 기회"라고 주장했다.
'동물을 위한 소리'의 옥사나 다닐로바는 서커스 동물이 엄청나게 비좁은 우리에서 생활하고 '단식'과 같은 가혹한 훈련을 견디는 등 적절한 규제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단 서커스단의 새로운 동물 구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시행하자고 제안하면서 "그러면 몇 년간 서커스단 동물 수가 크게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러시아 시민사회위원회의 엘레나 샤로이키나 생태 및 지속 가능한 개발위원장은 "서커스는 오랜 기간 발전한 거대한 산업인 만큼 동물의 생활 환경 개선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여론조사에서 러시아인의 41%는 모든 동물의 서커스 출연 금지에 찬성했고 11%는 야생 동물의 서커스 출연 금지만 찬성했다.
2019년 8월 조사에서는 동물의 서커스 공연에 53%가 찬성, 41%는 반대했는데 34세 미만 연령층에서는 대부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에서는 서커스 동물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지난해 1월 소치 서커스장에서는 사자가 조련사를 덮쳤고 2021년 7월 베레좁스키 서커스 공연에서는 재주를 부리던 곰이 조련사를 공격했다.
2018년 9월 마그니토고르스크 서커스장에서는 호랑이가 불길이 치솟는 '파이어 링'을 넘다가 경련을 일으키고 쓰러졌는가 하면 201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는 심각한 비만 상태인 서커스단 사자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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