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주현절 영상서 '흑인 분장' 인종차별 논란(종합)

입력 2024-01-07 22:17  

스페인 주현절 영상서 '흑인 분장' 인종차별 논란(종합)
백인 배우, 얼굴에 갈색칠 분장하고 나와 연기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스페인 마드리드 시청이 기독교 절기인 주현절을 맞아 제작한 어린이용 영상에서 흑인 분장을 한 배우가 등장해 인종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고 AFP통신 등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문제의 영상은 마드리드 시청이 외부업체에 의뢰해 제작된 것으로, 동방박사 3명 중 하나인 발타사르 역할을 맡은 백인 배우가 얼굴을 짙은 갈색으로 칠하고 문법상 오류가 있는 스페인어 대사를 아랍어 어투로 말하는 장면이 담겼다. 발타사르는 기독교에서 중동계 혹은 흑인으로 묘사된다.
마리아 인마쿨라다 산스 오테로 마드리드 부시장은 논란이 일자 "영상 출연에 적합한 배우는 분명 아니다. 영상을 제작한 업체 측 실수에 유감이다"라고 사과했다.
주현절은 낙타에 선물을 싣고 먼 동방에서 찾아온 박사 3명이 마침내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기독교 절기다.
매년 주현절이 되면 TV로 생중계되는 대규모 행진 등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린다.
과거에는 행진 행사에서 주로 백인인 지자체 의원이 얼굴을 검게 칠하는 분장을 하고 발타사르 역할을 맡았으나 이같은 묘사가 인종주의에 해당해 금지해야 한다는 비난이 커지면서 2016년 당시 마누엘라 카르메나 마드리드 시장이 이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하지만 남동부 알코이 등 일부 지역에서 열리는 전통 행진에는 여전히 이런 관행이 계속되고 있다.
스페인 최초의 흑인 여성 의원인 리타 보사오는 매년 주현절 행진 때마다 등장하는 흑인 분장을 스페인 전역에서 전면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그는 "이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흑인 분장 관행은 흑인 노예에 대한 역사를 흐리게 하고 흑인 어린이의 입지를 약화시킨다"고 지적했다.
온라인 흑인여성 인권 커뮤니티 '아프로페미나스' 운영자 안토이네테 토레스는 "스페인의 교육시스템이 과거 노예제와 식민주의와 연관성을 가르치지 않아 많은 스페인인이 흑인 분장 행위를 인종차별주의로 인식하지 않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영어로 '블랙 페이스'(blackface)로 지칭되는 흑인 분장은 19세기 미국에서 인기를 끈 공연 장르인 '민스트럴 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민스트럴 쇼는 백인 배우가 얼굴을 검게 칠하고 입술을 붉은색 립스틱으로 과하게 칠하는 등 흑인을 희화해 묘사했다. 지금은 이런 관행이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적 고정관념을 부추기는 것으로 여겨진다.
스페인 양성평등부가 2021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페인의 아프리카계 절반가량이 스페인에서 태어났지만, 12%만 자신을 '아프리카계 스페인 사람'이라고 인식했다. 또 아프리카계 60%는 스페인에서 당하는 차별 탓에 스페인인이라고 느끼지 않는다고 답했다.
shi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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