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정보기관 연계 '해결사' 폭리…가족 11명 빼내는 데 1억원 요구"
(서울=연합뉴스) 유한주 기자 =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생지옥이 된 가자지구 주민들이 필사의 탈출에 나서면서 이들을 상대로 거액의 뇌물을 요구하는 브로커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지구 탈출을 시도하면서 이집트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브로커 측에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
이집트와의 라파 국경을 거쳐 가자지구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 수가 제한된 탓에 브로커들에게 큰돈을 내고서라도 출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 한다는 설명이다.
이집트 카이로 등지에 본사를 둔 것으로 알려진 이들 브로커 집단은 이전부터 라파 국경에서 활동해왔는데, 지난해 10월 7일 개전 이후 탈출 희망자가 크게 늘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미국에 사는 한 팔레스타인인 남성은 가자지구에 있는 아내와 자녀를 출국자 명단에 올리기 위해 3주 전 브로커에게 9천 달러(약 1천100만 원)를 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출국 당일에는 3천 달러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고 이 남성은 전했다. 막판에 자녀 이름이 명단에 없다며 추가 비용을 내라는 요구를 받았다는 것이다.
전쟁 이전에는 출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데 1인당 500달러(약 65만 원)면 충분했다고 한다.
이 남성은 브로커들이 "가자지구 주민의 피를 거래하려 한다"면서 "지옥에서 벗어나려는 사람들을 착취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지인 다수는 브로커들이 가자지구 탈출 수수료로 1인당 평균 5천∼1만 달러(약 660만∼1천300만 원)을 뜯어가고 있다고 증언했다.
돈을 더 많이 내면 더 빠르게 가자지구를 떠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현지인도 적지 않았다.
앞서 유엔은 가자지구 전체 인구의 약 85%에 해당하는 190만 명이 원래 살던 곳을 떠나 피란민이 됐다고 집계했다.
이들 상당수는 이스라엘 공습을 피해 남부 라파로 몰려들고 있다. 유엔은 전쟁 전 인구 15만 명이던 라파에 이제 약 100만명이 살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런 가운데 열악한 환경의 가자지구를 탈출하려는 주민이 폭증하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브로커에게 뇌물을 줘야 하는 실정이라고 현지인들은 전했다.
미국 시민권자도 예외는 아니다.
가자지구 출신 미국 시민권자 벨랄 바루드는 어린이 5명을 포함한 가족 11명을 가자지구 밖으로 빼내려면 8만5천 달러(약 1억1천만 원)를 내야 한다는 브로커 측 통보를 받았다.
바루드는 지난해 12월부터 미 국무부 등에 가족을 출국자 명단에 올려달라고 요청했으나 제대로 된 답을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응답하지 않아 이 선택지(브로커에게 돈 지불)를 고려하는 것"이라면서 "(브로커에게) 돈을 낸 사람이 하루 이틀 안에 (가자지구를) 떠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국무부는 개별 사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답했다.
시나이반도 전문가 호마나드 사브리는 브로커들이 "가장 취약한 이들을 노린다"고 지적했다.
사브리는 "가족 중 다치거나 아파서 출국을 서둘러야 하는 경우 그들(브로커)은 얼마든지 돈을 뜯어낼 수 있고 가족은 완벽한 희생양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집트 정보부(SIS) 국장은 브로커 사안과 관련한 언론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han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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