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이스라엘 수십년간 탄압" 발언에 환호·눈물
가자지구 절망 지속…"유엔은 무력, 이스라엘은 법 위에"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 "어떤 결과가 없을지라도 전 세계가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승리다."
요르단강 서안지구 라말라 인근의 커피숍 주인인 마르완 모하메드는 11일(현지시간) 시작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 혐의 관련 국제사법재판소(ICJ)의 재판에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AP 통신에 따르면 이날 서안지구 각지의 팔레스타인인들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ICJ 재판을 생중계로 지켜보기 위해 TV 화면 앞에 모여들었다.
가정뿐만 아니라 거리 곳곳의 커피숍에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TV를 시청했고, 택시 운전사들은 교대 근무 사이에 휴대전화로 재판 실황을 지켜봤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법무부 장관이 이스라엘의 조직적 탄압과 폭력이 수십 년간 계속됐다고 발언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졌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나블루스 출신 변호사 아살라 만수르는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에 책임을 묻고자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이번 사건이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팔레스타인인들의 희망을 되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베들레헴 주민 슬리만 무카르카르는 "가자지구를 황폐화한 전쟁과 우리가 겪은 모든 폭력 속에서 이런 일은 처음 본다"며 "이번 재판이 우리가 겪는 일을 세상에 알려줄 수 있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행복하다"고 말했다.
라말라의 광장에서는 무함마드 시타예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 총리와 주민들이 모여 이번 재판을 기념하고 남아공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시타예흐 총리는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의 옹호하는 여러분들에게 자랑스럽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아랍 각국에서도 이번 소송을 축하하는 분위기가 고조됐고, 튀니지 주재 남아공 대사관 앞에도 군중들이 모였다.
군중들이 팔레스타인 자유를 지지하고 휴전을 촉구하는 가운데 한 참가자는 "아랍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낸 남아공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 사회의 감격 한편으로 이날도 100일 가까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재판에 대한 관심조차도 사치였다.
가자지구 주민들은 이번 재판을 생중계로 볼 엄두도 낼 수 없는 형편이다. 생사 기로에 놓인 주민들은 이번 재판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을 뿐더러, 인터넷 연결이 가능한 이들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베들레헴의 개신교 교회 목사 문터 아이작은 "이번 재판으로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다. 나도 감동했다"면서도 가자지구의 상황을 언급하고는 "이번 일에 너무 행복해할 수 없다. 정말로 슬픈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의료진으로 활동 중인 나심 하산은 AP와 통화 중에도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전쟁 기간 휴전과 가자지구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촉구하는 유엔 결의가 무산되거나 무력화된 점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은 모든 법 위에 있고, 우리는 아무 희망이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통화 중에도 수화기 넘어로는 드론 비행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AP는 전했다.
이스라엘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이스라엘인 1천200여 명이 숨지고 240여 명이 인질로 붙잡히자 하마스 소탕전에 나섰고, 이에 따라 지금까지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2만3천여 명이 사망했다.
남아공은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했으며, ICJ는 약 2주 만인 이날 심리에 착수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집단학살에 맞서 싸우고 있다며 이번 소송에 강력 반발하고 있다.
josh@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