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침체·부동산 위기 해소할 대규모 부양책 주문에 中은 '선 긋는' 모양새
"경제하방 압력 과소평가…전기차 등 제조업 성장이 부동산 대체 못하고 있어"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리창 중국 총리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자국의 '대규모 부양책 없는 성장'을 강조한 데 대해 투자자들은 인내심을 시험하는 격이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이는 지난 16일 리 총리가 포럼 연설을 통해 "중국이 장기적인 위험을 축적하면서 단기적인 성장을 추구하지 않았다"면서도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5.2%를 달성했다고 밝히자 나온 반응이다.
성장이 매우 절박한 목표였으나 이전에 했던 대로 위기에 빠진 부동산 시장에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서 이뤄낸 성과로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지속할 것이라는 점을 리 총리는 강조했으나, 호응이 크지 않았다.
리 총리는 지난해 중국의 전기자동차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 태양광 패널 생산량이 54% 증가한 것을 포함해 밝은 면에 주목했지만, 시장은 중국의 경제 동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데 주목하는 분위기다.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의 루이 키이스 아시아태평양 지역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당국으로선 성장에 대한 우려를 주고 싶지 않으면서도 올해 별다른 부양책을 내놓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경제 하방 압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짚었다.
사실 전날 중국 국가통계국이 공식 발표한 2023년의 GDP 성장률 5.2%라는 수치는 결코 나쁜 성적은 아니다. 중국 당국이 작년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내놓은 경제성장 목표치 '5% 안팎'을 달성한 것이자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시기인 2020년 2.2%, 2021년 8.1%, 2022년 3%의 성장률의 기저효과가 반영된 중국의 작년 성장률은 기대 이하라는 지적도 나온다. 2015∼2019년에는 6∼7%였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굳어진 소비 침체, 부동산 시장 위기 지속, 미·중 전략 경쟁 심화에 따른 경제 위축 등의 상황은 심각한 수준이다.
실제 중국의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해 3개월 연속 마이너스였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년 동기 대비 2.7% 떨어져 15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우려가 지속되는 상황이다.
과잉투자와 중국 당국의 강력한 단속으로 재작년부터 본격화한 부동산 시장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최대 부동산개발업체 중 하나인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과 금융기업 중즈그룹 등이 유동성 악화 또는 파산 직전에 빠진 상태다. 지난해 중국 아파트 등 부동산 개발 투자는 전년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중국 GDP에서 부동산 비중은 25% 수준이다.
여기에 미·중 전략 경쟁으로 인해 첨단반도체를 중심으로 중국의 미래산업을 옥죄는 미국의 디리스킹(위험 제거 등)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중국의 수출은 급감하고 대중국 투자도 줄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디플레이션 우려를 잠재우고 부동산 위기를 해소하려면 중국 당국이 대규모 부양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만, 부채 누적을 우려한 중국은 선을 긋는 모양새다.
리 총리의 '부양책 없는 성장' 발언에 시장이 싸늘한 건 이 때문이다.
리 총리가 문제의 발언을 한 당일인 16일 미국 주식 시장에 상장된 중국 주식은 일제히 내렸으며, 이어 17일 '2023년 GDP 성장률'이 발표되자 홍콩 항셍지수가 2022년 10월 이후 최악의 날을 기록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투자은행 나티시스의 알리시아 가르시아 헤레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규모 부양책 없는 중국 성장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중국은 1990년대 초반 디플레이션에 대응하지 않은 일본은행과 같은 실수를 저지를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이 올해 5% 성장에 도달하려면 위안화 금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글로벌 IB인 BNP 파리바의 재클린 롱 중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에서 부동산 투자 감소가 바닥에 도달하지 않았으며 부동산이 가장 큰 경제 하방 압력"이라면서 "전기차 등 제조업 부문의 성장이 그동안 핵심 성장 동력인 부동산을 대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핀포인트자산운용의 장즈웨이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부문에 투자가 줄면서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에 의존도가 커졌으나 이런 전환이 정착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짚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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