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 상임이사국 주도체제 무너져…비상임 10개국 역할 중요"
"유엔무대서 한국 보는 눈 확실히 달라진 것 피부로 느껴"
(뉴욕=연합뉴스) 이지헌 특파원 = 황준국 주유엔 한국대사는 최근 몇년 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작동 시스템이 변화해 한국과 같은 10개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E10)의 존재감이 커졌다고 밝혔다.
황 대사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주유엔 한국대표부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안보리는 지난 수십 년간 5개 상임이사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중심 시스템이었지만 미중 경쟁구도 후 다이내믹스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이 경제, 정치, 군사, 문화 면에서 10대 강국에 들다 보니 우리를 보는 눈이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며 "항상 피부로 느끼고 있다"라고 했다.
다음은 황 대사와 나눈 일문일답.
-- 안보리 이사국 활동 시작하면서 소회는 어떤가.
▲ 365일 24시간 체제 돌입이라고 각오는 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돼버렸다. 지난 한 주만 보더라도 8개 의제를 가지고 회의를 14번 정도 했다. 앉아서 토론하는 시간도 많지만, 발언문도 미리 준비하고 본부와 협의도 해야 한다. 다른 이사국 동향 파악은 물론이다. 저나 직원들이나 생활 시간표가 많이 달라졌다. 또한 안보리 이슈가 대체로 전쟁 또는 인도주의적 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사안들이다. 이를 다루면서 저나 직원들이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 안보리 이사국 임기 시작 후에 달라진 게 있다면.
▲기존 유엔 대표부 업무에서 추가로 새로운 일이 늘어났다. 기존에 안보리 밖에서 팔로우만 하던 것과 실제로 회의장에 들어가서 얘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P5(상임이사국 5개국)는 수십 년 동안 해온 일이다. P5는 안보리 담당 외교관이 거의 50~100명이나 된다.
2년 임기의 선출직 이사국 10개국(E10)은 새로운 일이 생긴 것이므로 많게는 20명까지 증원을 받는다. 우리 같은 경우에는 외교부 인원 자체가 워낙 소수이기 때문에 증원을 그렇게 많이 못 받는다.
-- 몇 명 정도 증원됐나.
▲ 4명 정도 받았다. 안보리 담당 외교관은 15명 정도로 E10 중에서도 작은 축에 속한다. P5는 인원도 크지만 현지 대사관의 현장 정보망도 크다. 안보리는 절차도 매우 중요한데 이런 면에서 기관 차원의 축적된 노하우와 전문가가 있다. 그런데도 상임이사국과 비상임 이사국이 똑같은 일을 하다 보니 힘들 수밖에 없다.
다자외교 무대에서는 추가로 언어 문제가 있다. 공식 회의장은 물론이고 비공식 협의장에서조차도 동시통역이 된다. (영어·중국어·프랑스어·러시아어·스페인어·아랍어 등 6개 유엔 공식언어 사용국은) 영어로 얘기하다가도 말이 막히면 그냥 자기 말로 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당연히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한다. 우리는 한국어로 할 수가 없지 않나. 언어 핸디캡이 있기 때문에 사람이 더 많이 필요하지만 현실 여건 범위에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랄까 대하는 게 달라진 게 있나.
▲ 유엔 무대에서는 일단 안보리 이사국이 되는 것은 모두 대단한 것으로 생각한다. 유엔 무대에서는 안보리가 차지하는 유산이 있다.
-- 이해 당사국의 협조 요청도 들어오나.
▲ 그렇다. 며칠 전만 해도 (안보리 의제 당사국) 대사들이 찾아와서 만나자고 했다.
-- 외교 관계 지평이 넓어지는 효과가 있나.
▲ 당연하다. 너무 어느 한 나라와 입장이 동일하면 사실 외교 지평이 별로 넓어질 게 없다. 우리의 가치와 처한 현실, 역사가 반영돼 입장이 정해지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국, 서방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안보리 의제에 입장이 다 같을 수는 없다. 우리 나름의 그런 특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합리적이면서도 우리의 특색이 있고 세계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잡아나가는 게 중요하다.
-- 의제 관련 입장을 정할 때 원칙 같은 게 있나.
▲ 크게 보면 글로벌 중추국가 비전이 있다. 협력과 국제 연대에 기초해 세계 평화와 자유 번영에 기여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큰 원칙이다. 이를 안보리 60여개 이슈에 대해 구체화하는 것은 헌법적 가치와 우리가 처한 경제·지정학적 현실, 우리의 독특한 역사를 반영해 사안에 따라 정해야 한다.
-- 예전보다 선출직 비상임 이사국의 입지가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3~4년 전부터 나온 현상이다. 안보리는 수십년간 P5 중심의 시스템이었다. 가장 큰 원인은 미중 간 경쟁 구도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E10(Elected 10)이란 말도 없었다. 비상임이사국으로만 불렸다. 선출직 이사국의 존재감이 확 커진 것이다. 이제는 P5도 뭔가 하려면 먼저 E10 이사국과 세력을 형성해야 한다. P5가 그림을 만들고 나머지가 따라갔던 과거와 비교해 순서가 바뀌었다.
-- 10년 전, 20여년 전 한국이 이사국 활동하던 때와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 완전히 다른 환경이다. 활동 반경도 그렇고 안보리 내 다이내믹스도 달라졌다. E10은 수동적으로 협의만 받지 않고 주도적으로 결의안을 만들기도 한다. 소위 틈새시장이 커졌다. 과거 비상임 이사국은 안보리 담당이 10명 안쪽이었는데 지금은 30명씩으로 늘게 된 이유다.
한국의 위상이 달라진 것도 있다. 지금은 경제, 정치, 군사, 문화까지 10대 강국에 드는 상황이다. 우리를 보는 눈이 확실히 많이 달라졌다. 여기서 피부로 항상 느끼고 있다.
-- 안보리 내에서 북핵 문제 변화를 우리가 이끌 여지가 있나.
▲ 세계정세와 직결되는 문제다. 미중 경쟁과 러시아까지 포함한 국제정세가 한반도 정세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한반도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 세계 초강대국 간 경쟁 구도가 작용하는 곳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 비핵화라는 공동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이전에는 북핵이나 미사일 문제는 어느 정도 협조했다. 3∼4년 전 P5 중심 체제가 붕괴되면서 이게 작동하지 않기 시작했다. 지금은 북한이 대형 도발을 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며 아무런 협조를 안 한다. 우리가 이사국이 됐다고 해서 중국과 러시아의 그런 입장이 바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나.
▲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중국·러시아의 기본 입장이 갑자기 바뀔 것은 아니지만, 중·러 모두 한국이 이사국이 된 것을 굉장히 신경 쓰고 있다. 한미일이 동시에 안보리 이사국이었던 게 과거 1997년에도 있었지만 그때는 북한이 1차 핵실험도 하기 전이어서 본격적인 안보리 의제는 아니었다. 지금은 북핵 문제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핵 문제이고 군사적 긴장도도 높은 상황이다.
중국,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이 있지만 이들도 국제 여론을 신경 쓰기 때문에 무조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부권 행사 때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
양자적 관점에서 볼 때도 한국은 경제적으로나 군사적, 외교적으로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나라다. 한국과의 관계를 상당한 정도로 신경 써야 하는 상황이다.
-- 어떤 게 변화의 촉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나.
▲ 상황이 굉장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특히 북핵 문제의 성격이 최근 2년 새 상당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미국에 대한 억제력 차원에서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2022년 9월 북한이 핵무력 정책을 새로 발표하면서 전술핵 사용을 시사하고 선제적 핵 사용도 명시적으로 언급했다. 얼마 전엔 김정은 위원장이 한국을 두고 적대적 교전국이라고 선언하며 남북 관계 성격 규정을 새로 했다.
그동안 안보리는 핵실험 또는 장거리 미사일에 대해 조치를 취해왔다. 이제 북핵 문제의 포커스가 달라졌으니 어떻게 할 것이냐가 안보리에서 논의하는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고 새로운 과제다. 안보리 입장에서 봤을 때도 이것은 이제 새로운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 중국·러시아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는 지점도 북핵 성격 변화와 관련된 것인가.
▲ 지금 얘기하기는 어렵다. 중국, 러시아가 지금은 미국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지만 북한의 비핵화 자체와 안보리 제재 이행과 같은 기본적인 질문에 대해선 아직 '노'(NO)라고 한 적은 없다. 중·러가 아직은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고, 대북 제재를 안 지켜도 된다고 얘기한 적은 없다는 의미다. 안보리에서 중국, 러시아와 최소한 대화할 수 있는 여지는 있다고 본다.
북핵 문제의 성격이 바뀌었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안보리에서의 논의나 대응도 과거와 똑같을 수는 없다. 미국, 일본 또는 유럽연합(EU)과 협력하면서 중·러와 어떤 식의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 아니면 뭔가 다이내믹스를 바꿔나갈 수 있느냐가 앞으로 안보리 내에서의 우리의 가장 큰 과제다.
-- 북한 핵실험 도발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때처럼 핵실험 후에도 추가 제재 결의에 중·러가 협조를 안 할 것인지가 궁금한 지점이다. 그에 대해선 현재 단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 중·러도 ICBM과 핵실험을 똑같은 성격으로 규정하지는 않은 것 같다.
-- 여전히 중·러가 미온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있다.
▲ 그렇다. 하지만 (제재 결의 때) 기권하느냐 거부권을 행사하느냐는 굉장한 차이다.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 통과가 안 되는 것이니까. 추가 안보리 조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은 맞지만 문제 해결에서의 핵심은 아닐 수 있다. 이미 부과된 10개 대북 제재는 굉장히 강력한 제재다. 철저히 이행되고 북한에 철저히 책임을 묻는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것이다. 결국은 어떻게 사태 추이를 중단시키고 다르게 방향을 틀거나 되돌릴 수 있느냐이다. 그러려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하다.
-- 북한 인권도 중요한 의제다.
▲ 북 인권 문제는 지난해 8월 5년 반 만에 안보리에서 공식 회의를 했다. 올해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북한 인권 리포트를 낸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도 안보리 공식 회의를 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다만, 중·러가 회의 개최를 반대할 게 확실시되기 때문에 (안건 채택을 위한) 절차투표에서 15개 이사국 중 9표 이상을 받는 게 관건이다.
북한 인권 문제는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 측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고, 같은 민족이라 더욱 중요한 문제다. 또한 안보 측면에서 북한 인권 문제가 모든 면에서 북핵 문제와 상당히 연관이 있다.
인권 문제를 빼고 보면 북한이 안보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핵 개발을 한다라는 중국과 러시아의 내러티브가 다른 나라에 그럴듯하게 들릴 수 있다. 인권 문제와 같이 보면 달라진다. 북한처럼 인권이 철저히 무시되고 유린당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많지 않다. 정당한 안보 차원에서 핵 개발을 해야 한다는 논리가 무너지는 지점이다. 북한은 인권 문제에서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 유엔 무대에서 북한과 직접 교류하는 지점이 있나.
▲ 없다고 봐야 한다. 여기는 사실상 전쟁터다. 유엔 무대란 곳은 모든 나라 외교관이 모여 토론하거나 합의해야 하는 다자 무대다.
-- 인력 부족 문제가 커 보이는데, 얼마나 증원이 필요한가.
▲ 이미 언급했듯이 증원이 현실적으로 쉬운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가 못느끼는 언어 문제도 있다. (유엔 공식언어를 모국어로 쓰는) 다른 나라에서 준비하는 데 1시간이면 될 일을 우리는 2시간이 걸릴 수 있다. 언어 문제 관련해 좀 더 얘기하자면, 언어가 국력이고 돈이라고 생각한다. 외교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문화 등 모든 영역에 해당한다. 사우디 근무시 간호사 취업을 위해 일한 적이 있는데, 영국 간호사가 우리 간호사보다 월급을 두 배 받는 현실을 목도했다.
우리나라가 싱가포르 정도로 국민들이 영어를 구사하는 나라가 되면 추측건대 몇 년 새 국민소득이 2배로 될 것이다. 한국이 산업화, 민주화, 한류 확산으로 도약을 해왔는데, 언어로 4차 도약을 할 수 있다고 기대한다.
p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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