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학생 이민 조건 강화 등 폐지…'절차 위배' 지적
인력 부족 직종 종사자 체류 허가·범법자 추방 조치는 '통과'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의회가 이민 문턱을 높일 목적으로 지난달 통과시킨 이민법 개정 조항의 3분의 1 이상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판단이 나왔다.
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인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25일(현지시간) 이민법 개정안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결과 총 86개 조항 중 32개 조항에 전체 혹은 부분 위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위원회는 이들 조항 상당수가 애초 이민법 개정 취지와 범위를 벗어난 부수 조항으로서, 헌법이 규정한 입법 절차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대표적으로 가족 이민 시 프랑스 필수 거주 기간을 18개월에서 24개월로 늘린 조항, 외국 학생들에게 보증금을 징수하는 조항, 프랑스에서 태어난 외국인 자녀에 대한 자동 국적 취득권 폐지 조항이 애초 개정 취지와 무관하게 삽입됐다는 판단을 받았다.
아울러 성년 불법 체류자에게 형사 벌금을 부과하는 조항, 외국인의 각종 수당 수급 자격을 강화한 조항도 배척됐다.
헌법위원회는 의회에서 매년 회의를 열어 망명을 제외한 이민자 한도를 논의하도록 한 조항도 부분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정부나 양원이 헌법에 따라 부여받은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국경 검문 과정에서 외국인이 신원 확인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로 지문을 채취하거나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한 조항도 위헌으로 봤다.
반면 인력 부족 직종에 종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특별 체류를 허가하는 조항, 범죄를 저지른 불법 체류자의 추방 기준을 낮춘 조항 등은 무난히 헌법위원회 승인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애초 마크롱 정부가 제출한 이민법 형태는 살아남고, 의회 논의 과정에서 보수 진영의 요구로 반영된 조항 대부분은 퇴짜를 맞은 셈이다.
정부를 대표해 이민법 개정에 앞장선 제랄드 다르마냉 내무부 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헌법위원회가 정부의 초안 전체를 승인했다"며 "정부는 의회가 추가한 수많은 조항에 대한 비판이 의회 절차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이날 결과를 환영했다.
반면 이민법 개정안이 정부 초안보다 강화된 것을 정치적 승리로 받아들였던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판사들의 권력 장악과 대통령의 지원으로 헌법위원회는 프랑스인들이 가장 지지하는 강경 조치인 이민법을 사산시켰다"고 맹비난했다.
마크롱 정부가 지난해 제출한 이민법 개정안은 우파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한 상원 논의를 거치면서 한층 강화됐으나 하원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에 어떻게든 이민법을 개정하려던 마크롱 정부는 양원 합동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합의안 도출을 요청했고, 그 결과 상원의 강경 안과 유사한 조항들로 최종 정리돼 국회 통과 절차를 마쳤다.
그러나 법안 통과 이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부터 나서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 조항이 있다"며 헌법위원회에 법안 심사를 요청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위원회 승인을 받은 조항들에 대해선 조만간 공포 절차를 거칠 예정이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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