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적 상황 개선'도 요구…군사작전 중단'은 언급 안해
네타냐후, ICJ 결정 즉시 "터무니 없다" 반발
(요하네스버그·베를린=연합뉴스) 유현민 김계연 특파원 =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가 26일(현지시간) 이스라엘에 제노사이드(집단학살)를 방지하고 가자지구 주민의 인도적 상황을 개선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내 군사작전의 즉각 중단하라고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ICJ는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을 제소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청을 검토해 이날 6개 항목의 임시조치 결정을 내렸다.
ICJ는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살해와 심각한 신체·정신적 상해 등 제노사이드협약(CPPCG)이 금지한 행위를 방지할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명령했다.
또 이스라엘에 자국 군대가 집단학살을 저지르지 않도록 조치하고 직접적·공개적 선동은 방지·처벌하라고 했다. 집단학살 혐의의 증거를 보전하라고도 명령했다.
팔레스타인 주민의 인도주의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도 요구했다.
조앤 도너휴 ICJ 소장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집단학살 행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를 인정한다"며 ICJ에 재판 관할권이 없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ICJ는 "가자지구 분쟁의 모든 당사자가 국제인도법의 구속을 받는다는 점을 강조한다"며 "하마스와 다른 무장조직에 납치된 인질들의 운명을 깊이 우려하며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석방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결정에 참여한 판사 17명에는 이스라엘 출신 판사 아하론 바라크도 포함돼 있다. 그는 "집단학살이라는 주장에 타당성이 없다고 확신한다"면서도 선동 방지와 인도적 상황 개선 등 2개 항목의 임시조치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AP통신은 전했다.
남아공은 ICJ에 제출한 소장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권리가 더는 극심하고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데 필요하다"며 9개 항목의 임시조치를 요청했다.
남아공은 이 가운데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작전 즉각 중단'을 가장 먼저 제시한 바 있다.
ICJ의 임시조치는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혐의에 대한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일종의 가처분 명령이다.
유엔 사법기구인 ICJ의 임시조치는 본안 판결과 마찬가지로 강제로 집행할 방법은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인 2022년 3월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시작한 군사작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ICJ의 임시 조치 결정을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집단학살을 전제로 한 ICJ의 명령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이스라엘 측 탈 베커 변호인은 지난 12일 공개심리에서 "집단학살 행위가 있었다면 이는 이스라엘을 상대로 자행된 것"이라며 이번 전쟁이 자위적 방어권 행사라는 논리를 폈다.
이스라엘은 이날 집단학살을 방지하라는 ICJ의 임시조치 명령에 "터무니없다"며 반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ICJ 결정 직후 낸 히브리어 성명에서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국가를 방어하고 국민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주장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한 뒤 "이를 논의하겠다는 법원의 의지는 대대로 지워지지 않을 수치로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하마스 고위 관리인 사미 아부 주흐리는 "ICJ의 결정은 이스라엘을 고립시키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저지른 범죄를 폭로하는 데에 중요한 진전"이라며 "이스라엘 점령군은 ICJ 결정을 이행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을 제소한 남아공은 '결정적인 승리'라며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남아공 국제관계협력부(외무부)는 성명에서 "오늘은 국제법의 지배에 결정적인 승리이며,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정의를 찾는 데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고 말했다.
로널드 라몰라 남아공 법무장관은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무덤에서 미소를 지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도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집행위원회 회의를 중단하고 ICJ의 재판 생중계를 지켜보면서 환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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