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 "중국·이란·신흥국과 경제·외교 강화"
"달러화 기축통화 약화 노려…미 중심 국제 금융시스템에 도전"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기자 = 러시아가 중국, 이란, 주요 신흥국과 경제·외교 관계를 강화하면서 미국 중심의 국제 금융시스템에 도전하고 서방의 영향력을 약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키우고 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27일(현지시간) 진단했다.
이런 배경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이 러시아에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분석됐다.
러시아가 서방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막아내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연합(EU)의 우크라이나 추가 지원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미국은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을 지지하면서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입지를 훼손했다는 것이 러시아의 판단이다.
러시아 당국자들은 중국과의 교역 증가, 이란과의 군사 협력, 아랍권에 대한 외교적 지원, 브릭스(BRICS,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경제 5개국) 회원국 확대 등을 러시아의 입지 강화 사례로 꼽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하마스와 이를 지원하는 이란의 대표단을 러시아로 초청했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해 12월에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러시아 당국자는 "이란을 통해 (중동) 상황을 아주 첨예하게 만들어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을 더 분산시킬 수 있다"며 "러시아가 개입할 수 있는 '핫스폿'(분쟁 지역)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 유럽에서 많은 선거가 치러지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 지원이 더 줄어들게 러시아가 '정보 작전'을 벌일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WP는 유럽의 한 정보기관이 입수한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내부 문서를 검토한 결과 러시아가 2022년과 2023년 세계 기축통화로서 미 달러화의 역할을 약화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중 2023년 4월 3일 회의 문건에는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새로운 세계 질서를 만드는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의 측근이 작성한 다른 문건에서는 인공지능(AI)과 사이버 시스템, 사물인터넷에 대한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 강화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 일환으로 양국이 세계 금융거래에 대한 서방의 지배력을 벗어나기 위해 블록체인과 같은 대체 결제 시스템에 기반한 새로운 금융 시스템과 유라시아 디지털 통화를 만들자는 구상을 제시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방의 각종 제재에도 군사적, 경제적으로 건재하다는 내부 인식은 오는 3월 대선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국내 입지를 공고히 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에너지 재벌 올레그 데리파스카 등 러시아 억만장자들은 처음에는 우크라이나 침공이 러시아의 경제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보였지만 지금은 서방과의 결별이 세계 경제를 재편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러시아의 반정부 인사로 영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전 석유재벌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커지는 세계적 혼란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향후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분쟁이 발생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세계 질서를 훼손하려고 한다"며 "이것이 그의 유일한 생존 전략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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