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생활 정보부터 연애까지 거론…"자녀 '자원 쟁탈' 돕는 중"
(베이징=연합뉴스) 정성조 특파원 = 자녀 숫자가 줄고 교육열은 높아진 중국에서 '학부모 단체대화방'을 이용한 자녀 학교생활 관리가 대학까지 이어지고 있다.
29일 중국신문주간에 따르면 최근 중국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대학에도 학부모 대화방이 있다'는 주제가 관심을 끌었다.
초등학교 또는 중·고등학교에나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던 학부모 단체대화방이 성인 자녀가 다니는 대학에도 있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이어졌지만, 실제로 이런 대화방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중국신문주간은 전했다.
이런 단체대화방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단과대학 관리교사(輔導員)가 개설한 대화방으로, 학교 공지사항과 성적 등을 공유하는 게 주된 목적이고 학부모와 소통은 부가적으로 이뤄진다.
다른 하나는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화방이다.
이런 대화방은 대학이나 학년, 단과대학은 물론 학과 내 반(班)별로도 나뉜다. 당연히 학교 소속 교원은 없고, 학부모끼리 자녀 학업과 생활 정보를 공유한다.
상하이재경대학 2학년인 저우커(이하 가명)의 경우 1학년 1학기 시작 전부터 학교 측이 만든 학부모 단체대화방이 활성화된 것을 겪었다. 이 대화방에는 신입생 200여명과 학부모 300여명이 들어가 있었다.
저우커는 자신이 곧 "부모와 관리교사의 '연합 통제'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예감에 휩싸였고, 이런 걱정은 현실이 됐다.
학교 측이 학과 관련 대회 공지나 장학금 명단 등 정보를 단체대화방에 올리자 성적에 관심이 많은 저우커의 아버지는 "너는 왜 높은 등급의 장학금을 받지 못하느냐", "우수한 친구와 잘 지내야 한다"는 등의 연락을 해왔다.
헤이룽장성의 한 대학에서 30년 가까이 관리교사로 일한 린훙은 최근 몇 년 새 자신이 학부모 단체대화방 안에서 '인공지능(AI) 봇'이 된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단체대화방이 '공고란' 역할에 그쳤다면 이제는 학부모들이 궁금해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답을 해주게 됐기 때문이다.
군사훈련 일정을 묻는 사람부터 기숙사 침실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전송해달라는 사람까지 '민원'은 다양했다. 매 학기 수업 시간표를 보내달라고 하다가 자녀가 학업에 뜻이 없다고 느끼자 공무원 시험 등의 요건이 무엇인지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학부모끼리 만든 단체대화방은 가입도 까다롭다.
중국농업대학에 자녀를 입학시킨 학부모 A씨는 단체대화방에 들어가기 위해 방 주인의 '심사'를 거쳤는데, 수용인원이 거의 들어차 대기번호가 발급됐다.
이런 자발적 대화방에서는 자녀의 전공 변경 방법이나 졸업 후 호적 변경 방법 등에 관한 정보는 물론, 자녀의 연애 문제를 공유하는 학부모도 찾아볼 수 있다.대화방에서는 학번이나 석차, 졸업 후 진로 등 학생 개인정보가 그득한 문서 역시 돌아다닌다.
복수의 대학 관리교사들은 이 같은 학부모 단체대화방이 '95후'(1995년 이후 출생)나 '00후'(2000년 이후 출생) 학생들이 입학한 뒤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학생들이 나름의 대책을 내놓는 경우도 있다. 난징대의 한 학생은 학부모 단체대화방 초대를 피할 수 없게 되자 많은 동급생이 서로 부모인 척 대화방에 들어갔다고 털어놨다.
쉬란 샤먼대 고등교육발전연구센터 교수는 "지금 대학생의 학부모들은 고등교육의 수혜자인 경우가 많아 자녀가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재현하기를 기대하거나 다음 세대의 교육에 발언권이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쉬 교수는 "요즘의 학부모가 단체대화방에 들어가는 목표는 매우 명확하다"며 "바로 자녀가 '자원 쟁탈'에서 기선을 잡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바오웨이 베이징대 교육학원 부교수는 "현재 중국 사회는 부모의 참여 범위에 관한 변혁을 겪고 있다"며 "지금의 부모는 취업 스트레스가 크다는 점을 감지하고 자녀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대학 단계로 끌어들여 대학 생활에 깊이 참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관리교사는 "과거 대학생은 '어디에 가서 치약을 사는가' 같은 일은 물어보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탄했다. 이제 관리교사들은 옷 사는 법, 전기세 내는 법, 문이 고장 났을 때 대처하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가 비행기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학부모의 요구로 아침에 학생을 깨우기도 한다.
린훙은 "사람들은 학생을 '온실 속의 꽃'이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과도한 보호·간섭으로) '꽃도 못 피워본'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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