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 관련 건물은 물론, 대학과 일반 주택도 폭파
분리장벽 주변 '완충지대' 마련 시도도…국제법 위반 소지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이슬람 사원과 대학, 주거용 건물 등을 무더기로 철거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하마스의 지하터널이나 군사시설이 숨겨져 있었던 경우가 상당수라는 점을 감안해도, 그저 이스라엘 영토와 가깝다는 이유로 폭파된 건물도 적지 않아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소셜미디어 상의 오픈소스 정보와 위성촬영 이미지 등을 자체 분석한 결과, 이스라엘군이 가자 지상전을 본격화한 작년 11월 이후 최소 33차례에 걸쳐 폭파해체 공법이 사용됐다고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건물 내에 지뢰나 폭발물을 설치한 뒤 안전거리 바깥에서 기폭시키는 방식으로 철거를 진행 중이다.
예컨대 작년 11월 촬영된 한 영상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중심도시 가자시티의 대형병원 인근에 있는 최소 4층짜리 건물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모습이 담겼다.
같은해 12월에는 도시 중심부에 위치한 팔레스타인 광장 주변 12개 건물이 한꺼번에 폭파됐고, 지난달에는 가자시티 주요 교육기관인 이스라 대학이 같은 방식으로 파괴됐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이런 작전이 "군사적 필요에 바탕을 두고 국제법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수행됐다"고 주장했다.
민간인을 '인간방패'로 삼는 하마스의 '테러 기반시설'이 숨겨져 있었기에 파괴한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실제, 하마스 등은 총연장 50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땅굴 네트워크를 구축한 채 이스라엘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스라엘군이 과도한 무력을 행사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제네바 대학의 국제법 전문가 마르코 사솔리 교수는 이스라 대학의 경우 한때 하마스에 의해 군사적으로 이용됐다는 이유만으로 파괴됐는데 "그것만으로는 파괴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 무관한 건물도 상당수를 파괴한 것으로 보인다고 NYT는 짚었다.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본토 사이에 '완충지대'을 확보하겠다며 분리장벽과 가까운 팔레스타인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부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달 초에는 이스라엘군이 분리장벽과 가까운 가자지구 남부 쿠자 마을의 주택 200여채를 연쇄 폭파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됐다.
같은달 22일 가자지구 중부에서 사망한 이스라엘군 병사 21명도 분리장벽 주변 건물을 철거하려고 폭발물을 설치하던 중 하마스의 로켓추진유탄(PRG) 공격에 연쇄 폭발이 일어나 목숨을 잃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익명의 이스라엘 당국자는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1천200명 가까운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을 학살한 것을 언급하면서 그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장벽 근처 건물들을 철거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민간시설을 파괴해 완충지대를 조성하는 행위는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민간시설을 파괴할 수 있다는 국제법에 위반될 소지가 크고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전쟁이 종식돼도 해당 지역에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돌아갈 집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의 매슈 밀러 대변인은 작년 12월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본토간 경계선을 따라 완충지대를 구축하는 행위는 가자지구의 영역 축소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입장에 대한 '침해'(violation)라고 규정한 바 있다.
후삼 좀롯 영국 주재 팔레스타인 대사는 "이스라엘의 계획은 가자지구를 파괴하고 사람이 살 수 없는, 생명이 없는 땅으로 만들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NYT는 가자지구 중부에서 이스라엘군 병사 21명이 몰살하는 참사가 벌어지고서 불과 이틀뒤 소셜미디어에는 이스라엘군이 비슷한 작전을 진행하는 영상이 올라왔다고 전했다.
이 영상에 등장한 이스라엘군 병사들은 전사한 동료들을 기리는 의미로 21채의 주택을 파괴한다며 기폭스위치를 눌렀고, 곧 대규모 폭발이 일어났다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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