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 누르다으 마을…"지진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아픔
정부, 임시 정착촌과 상가 조성했지만…시선 바로 돌리면 곳곳에 1년 전 상흔
한국 기자란 말에 "형제의 나라, 우릴 기억해달라" 선뜻 티셔츠 건넨 옷가게 상인
(가지안테프[튀르키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친하게 지내던 친구를 잃었다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1년 전 덮쳐온 강진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고등학생 슬라(15)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죽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우리의 일상이 다시 예전과 같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지진 발생 1주년을 닷새 앞둔 1일(현지시간) 진앙지인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 지역을 찾았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주관 프레스투어(기자단 현장방문)에 참가한 내외신 기자 약 60명이 지난 하룻밤을 머문 가지안테프 샤힌베이의 한 호텔은 재해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듯 외관상 멀쩡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눈을 돌려 시내 쪽으로 3분 정도 걷다보니 지진 당시 찢겨나간 건물들의 흔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정부 청사 근처에도 무너진 콘크리트 잔해만 걷어놓은 상태로 재건축에 착수조차 못 한 공터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기원전 청동기 히타이트 제국 시절에 처음 세워져 기원후 2세기 로마제국이 증축한 가지안테프 성도 축벽과 성곽이 여전히 심하게 훼손된 상태로, 가림막과 구조물로 덮어뒀을 뿐이었다.
낮이 밝은 뒤 찾은 누르다으 마을은 지난해 2월 6일 새벽 4시 17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진앙지에서 불과 25㎞ 떨어진 곳이다.
튀르키예 정부가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임시 정착촌과 상가를 깔끔하게 조성해 뒀지만, 이곳에 머무는 주민들의 뇌리에는 지진 당시의 아픔이 여전히 생생했다.
컨테이너 가옥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에는 집을 잃은 주민들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외부 사람들을 만난 아이들의 얼굴에는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했지만, 다소 낡은 옷차림은 어려운 살림살이를 짐작하게 했다.
대문 앞마다 음식과 생필품이 담긴 구호품 상자도 쌓여 있었다.
마을 회관 앞 벤치에 앉아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던 슬라는 "지진이 났을 때 너무 무서웠고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며 "전쟁이 나는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슬라는 지원이 충분하냐는 질문에는 "불행하게도 아직 부족한 것이 많고, 마음의 상처도 아직 아물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코레(Kore·한국) 사람들이 여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뻤고,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는 슬라의 얼굴이 잠시나마 환해졌다.
슬라는 "수십년 전 한국에 전쟁이 있었을 때 우리가 도우러 갔었다는데, 한국인들이 우리를 다시 도와준 것"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마을 길 건너에는 재해로 장사 터전을 잃은 이들을 위해 마련된 신축 상가가 들어섰다.
건물 귀퉁이에 이웃들과 둘러앉아 볕을 쬐던 아흐메트(60)는 3개월 전 이곳에 다시 신발 가게를 개업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진 때 숨진 삼촌과 이모 등을 한명씩 떠올리며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지금은 장사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고, 살아 있는 것에 신에게 감사하다"며 애써 웃어보였다.
바로 옆에서 옷가게를 하는 메흐메트(45)는 "카자흐스탄 사람이냐"라며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더니 한국인이라는 답을 듣자 "형제를 환영한다"며 인사했다.
그가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준 지진 직후 동영상에는 망가진 집을 둘러보는 아내가 흐느끼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메흐메트는 "엉망이 된 가게에서 멀쩡한 옷들만 건져와서 여기에서 다시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라며 "돈이 없어서 옷을 걸어둘 선반도 제대로 설치를 못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뇌전증을 앓는 12살짜리 둘째 아들에게 들어가는 각종 치료와 의약품 비용을 감당하려면 현재 벌이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그의 고민이었다.
그는 가게 한쪽에 쌓여 있던 옷가지 더미에서 튀르키예 국가대표팀 축구 유니폼 상의를 꺼내와 "형제의 나라에서 왔는데 빈 손으로 못 보낸다"며 기자에게 대뜸 선물로 건넸다. 그러면서 "이걸 보며 우리를 기억해달라"며 "어떤 재단이든, 협회든 바깥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컨테이너촌 옆에는 국제사회 구호품을 나눠주는 슈퍼마켓도 세워졌다. 100평 남짓한 내부에는 각종 음식과 생필품이 구비돼 있었지만 텅빈 선반도 많았고 주민 수천명의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해 보였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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