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 개인 비서 첫 채용…'소프트 섭정' 의견도
BBC "동생 해리 왕자와 화해 조짐 없어…둘은 매우 다른 길"
(런던=연합뉴스) 최윤정 특파원 = 영국 찰스 3세 국왕의 암 진단 후 건강을 둘러싼 우려가 이어지며 윌리엄 왕세자의 역할이 얼마나 커질지 관심을 끌고 있다.
왕실은 지난 5일(현지시간) 찰스 3세 국왕의 암 진단과 치료 시작을 발표했다. 리시 수낵 총리가 다음 날 암이 조기에 발견됐다고 밝혔지만, 암의 종류나 단계 등을 두고는 여전히 추측이 무성하다.
왕실이 암 진단 사실을 알린 것을 두고 일각에선 예전보다 훨씬 투명하게 정보를 공유한다고 평가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상태가 심각해서 공개할 수밖에 없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왕실에선 대중을 안심시키려는 일련의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6일엔 찰스 3세가 런던 거처 클래런스 하우스에서 버킹엄궁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커밀라 왕비는 8일 저녁 외부 행사에 참석해서 국왕에 관한 질문을 받고 "아주 잘 지낸다"고 답했다.
왕실은 또 국왕이 문서 업무, 비공개회의 등을 통해 헌법적 기능을 계속 수행할 것이며, 국왕 공백 시 대행하는 국가 고문들이 나설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국왕이 75세 고령인 데다 군주가 교체된 지 17개월밖에 안 됐다는 점 때문에 불안감과 긴장감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왕실도 국왕의 대외활동 재개 시점에 관해선 '시기상조'라고 했다.
만에 하나 금세 새로운 군주를 맞는 상황이 온다면 영국의 근간인 군주제 자체가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에 다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금을 쏟아부어 장례식, 대관식을 성대하게 했다가는 군주제 폐지 여론이 솟구칠 테고, 그렇다고 유럽 국왕들처럼 조촐하게 하면 왕실의 존재감이 약해질 수 있다.
가디언지는 윌리엄 왕세자를 보좌할 왕실 고위 인사들이 몇 명 없다는 점에서 현재 왕실이 취약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국왕의 동생 앤드루 왕자는 성추문으로 거의 퇴출당했고 차남 해리 왕자는 왕실과 결별했다.
해리 왕자는 아버지의 암 진단 소식에 미국에서 곧장 달려와 약 45분간 병문안했지만, 윌리엄 왕세자는 만나지 않고 약 24시간 만에 돌아갔다.
BBC는 10일 '국왕의 암 진단이 형제 사이를 풀어줄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올리브 가지의 흔적은 없다"며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윌리엄 왕세자는 해리 왕자가 자기 홍보에 아버지의 병을 이용했다고 여기며 더 화를 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BBC는 "해리 왕자가 갑자기 대서양을 건너 온 것을 두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왕실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국왕이 회복하더라도 두 아들은 매우 다른 길에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대중에 인기가 많은 왕세자빈은 갑자기 복부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다. 구체적인 상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주 입원 후 몇 달 요양해야 할 정도여서 심상치 않아 보인다.
윌리엄 왕세자도 부인과 세 아이를 돌본다는 이유로 3주간 대외활동을 멈췄다.
지금은 다음 주 방학을 앞두고 가족들과 함께 샌드링엄 영지로 갔다. 국왕도 이곳에 머물고 있다.
윌리엄 왕세자는 휴가 후 활동 확대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타임스 등은 이날 윌리엄 왕세자가 보좌진 개편을 통해 처음으로 개인 비서를 고용하면서 전직 외교관이자 지정학 컨설턴트인 이언 패트릭을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윌리엄 왕세자의 활동이 국내 행사에 대신 참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신호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지금으로선 섭정이 먼일이지만 왕의 병세가 악화해서 섭정이 필요한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로버트 헤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완전히 섭정하기 전 단계로 국왕이 법안 동의 등 핵심 기능만 수행하고 나머지는 윌리엄 왕세자 등에게 넘기는 '소프트 섭정'을 제시했다고 가디언지가 전했다.
로열 홀로웨이 런던대의 크레이그 프레스콧 박사는 아이뉴스에 "섭정법에선 섭정과 국가 고문들의 권한 대행 사이에 중간 단계가 없다"며 "법 개정을 생각해볼 때"라고 지적했다.
왕실 전문가들은 윌리엄 왕세자가 국왕이 받는 공문서들을 보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왕 말년에 찰스 3세는 그렇게 준비했다는 것이다.
아이뉴스는 섭정법을 개정해서 국왕 건강이 회복할 가능성이 있어도 상태가 심각한 경우엔 왕위 계승자가 임무를 더 많이 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있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헤젤 교수는 행여라도 지금 국왕과 왕세자 부부에게 모두 변고가 생길 경우 미성년인 국왕의 손자 손녀가 아니라 해리 왕자가 섭정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merciel@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