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11월 대선에서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을 경시하는 발언이 큰 우려를 낳고 있다. 한미동맹을 국가안보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미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유세에서 재임 중 나토 회원국 정상과의 일화를 언급하면서 방위비를 내지 않는 나토 동맹국에 대해 "러시아가 침공해도 당신들을 보호하지 않겠다. 러시아가 원하는 걸 하라고 부추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당시 자신의 발언을 소개했다. 아무리 열광하는 지지자들을 상대로 한 유세라고 해도 미국 대선 후보가 동맹국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는듯한 발언을 내뱉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일이다. 일찍부터 우려됐던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토 발언'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전후 수십년간 구축해온 동맹 질서를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위험한 인식이다. 어느 회원국 한 곳이라도 공격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대응한다는 나토의 집단안보 체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 국가 정상들은 즉각 트럼프의 발언을 비판하면서 유럽의 자체 안보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는 12일 "나토는 앞으로도 계속 공동 방어의 축으로 남을 것"이라면서 "누구도 유럽의 안보를 갖고 놀거나 거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동맹 경시 태도는 새로운 것도 없다. 재임 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면서 줄곧 동맹을 등한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는 이날도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나토가 방위비를 더 내야 한다면서 "내가 정당한 몫을 내지 않던 20개국에 (방위비를) 지불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미국의 군사적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돈이 들어왔다"고 주장했다.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미국이 나토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관측까지 나왔다.
트럼프의 위험한 동맹관은 한미동맹에 대한 신뢰를 흔들어 안보 불안을 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위비 분담 측면에서도 한국엔 적잖은 부담이다. 트럼프는 사법 리스크가 있긴 하지만 초반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어 지금으로선 재집권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트럼프 2기'가 한국에도 발등에 불이라고 할 만큼 당장 급박한 대비 과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무엇보다 주한미군 철수를 카드로 또다시 한국에 방위비 대폭 인상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이날 미 언론에 소개된 트럼프 행정부 전반기의 핵심 참모였던 존 켈리 전 백악관 비서실장의 인터뷰 내용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켈리 전 실장은 "그(트럼프)는 한국에 억지력으로 군대를 두는 것, 일본에 억지력으로 군대를 두는 것에 완강히 반대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언제든 주한미군 철수 카드가 나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뉴욕타임스가 트럼프의 '나토 발언' 후 1950년 미국이 극동 방위선에서 '일본은 포함하되 한국은 배제한다'는 취지로 내놓은 애치슨 선언을 상기시킨 점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 선언 5개월 후 6·25전쟁이 발발했다. 게다가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을 다시 추진해 급격한 북미관계 개선이 실현될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지금 남북관계가 단절된 상황이지만 대북접촉을 계속 외면하다가 북미간 직거래로 '통미봉남'하는 사태를 그냥 눈 뜨고 보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다각도로 여러 사안을 미리미리 대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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