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교민·주재원들, 수교 소식 반색…"행정 처리나 투표 더 쉬워지겠죠"
"한국어·K팝 인기 더 높아질 것"…"교역, 美제재 영향 당장 개선 없을 듯"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사람들이 밸런타인데이에도 만우절처럼 장난으로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어요."
'중남미 유일 미수교국'으로 남았던 쿠바와 한국 간 외교 관계 수립 소식에 쿠바 교민과 주재원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말 그대로 '깜짝 발표'에 교민 등은 각종 행정 처리와 투표권 행사 등 과정에서 그간 감수해야 했던 불편함을 크게 덜 수 있을 것이라며 큰 기대감도 드러내고 있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한글학교 운영을 맡고 있는 정호현 교장은 14일(현지시간)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제 주변 사람들 모두 (수교 소식이) 놀랍다는 게 주된 반응"이라며 "교민으로선 숙원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정될 줄은 다들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모국과 수교하지 않은 나라에서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애로사항이 많다며, "이젠 많은 게 개선될 것 같다"고 단언했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정 교장은 한국인 쿠바 영주권자 1호 주민이다. 쿠바 국적 남편을 만나 20년 가까이 쿠바에서 살며, 현지를 알고 싶은 한국인들의 든든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쿠바에서 혼인신고부터 출생신고까지 모두 진행한 '미수교국 내 행정 처리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정 교장은 "행정 관련 뭐 하나 선례가 없던 상태에서 한국과 쿠바가 미수교국이다 보니 (국가 간에)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예컨대 출생신고의 경우 일본 주재 쿠바대사관을 통해 쿠바에 서류를 보내는 방식으로 처리했는데, 전체 소요 기간만 8∼9개월은 걸렸다"고 회상했다.
여권 분실에 따른 재발급이나 기한 만료로 인한 갱신 관련 업무 역시 그간 애로사항 중 하나였다고 한다.
쿠바에 오랜 기간 체류한 적 있는 다른 주민도 "특히 여권을 잃어버리면, 우스갯소리로 지옥문이 열린다"며 "시간, 절차, 비용 모두 큰 부담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문윤미 쿠바 주재 영사협력원(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은 여권 분실의 경우 관광객 주요 민원 사항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그는 "최소한 한 번은 대사관(현재 기준 멕시코대사관에서 영사업무 겸임)을 방문해야 하지만, 그간 여건상 어려움이 많았다"며 "쿠바 주재 한국 영사관이 개설된다면, 교민이나 관광객 등 모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K팝과 K드라마에 열광하는 현지 주민 역시 희소식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K팝 관련 방송 등 지금도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은 열려 있지만, 더 다양한 기념품을 쉽게 구입하거나 한국 음식을 자유롭게 접할 기회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쿠바 현지에는 1만명 규모 한류 팬클럽이 활동하고 있다.
정호현 한글학교장은 "한국어 강좌에 대한 현지 수요도 매우 큰데, 교재나 교육기자재 등을 정부 차원에서 보내고 싶어도 그간 받을 도리가 없었다"며 "(수교 이후) 각종 문화 교류는 확실히 크게 늘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 부문에서는 당장 교역 규모가 크게 증대하는 등의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낳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극심한 경제난 극복을 위해 민간 부문의 경제활동 문호를 넓히고 있으나, 기업의 직접 수출입 절차 진행 제한 등 걸림돌이 여전해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아바나무역관은 "미국의 대(對)쿠바 경제 제재로 대금 지급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도 고려돼야 한다"며 "당장 교역 확대 기대 품목을 선정하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분석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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