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보루' 나토, 시대 뒤떨어진 개념으로 인식
"미국사 보면 세계대전 후 80년 동맹시대가 일탈"
트럼프, 국수주의 공감대 형성하며 '아메리카 퍼스트'
(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발언이 논란인 가운데, 일부 미국인들이 이에 환호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리고 이 환호의 배경에는 2차대전 이후 구축된 미국의 세계 리더십이 최근 몇 년간 변화했다는 점이 있다고 NYT는 진단했다.
냉전 시대에는 보루로 여겨졌던 동맹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환호하는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열린 대선 후보 경선 유세에서 자신이 대통령 재임 때 나토의 한 동맹국 정상과 나토 회의 중에 한 대화를 소개하면서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을 경우 러시아가 이들을 공격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같은 날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에서 미국 의회에 계류된 대규모 패키지 지원 예산안과 관련, 대외 원조는 차관 형식으로만 지원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당시 유세 현장에 있던 지지자들은 환호했지만, 동맹국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나토는 2차대전 직후 동유럽이 모두 공산화되는 등 소련의 세력이 커지자 서방 국가들이 조직한 군사 동맹이다.
냉전 종식 이후에도 유지됐던 동맹의 합의는 세계화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2008년 금융위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국제 협정과 기구에 대한 끊임없는 공격으로 인해 약화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치학자인 마이클 베클리 터프츠대 교수는 "동맹 구조는 냉전에서 승리하게 만들어졌고 위축된 상태"라며 "트럼프가 처음 취임했을 때 분명 충돌이 있긴 했지만, (동맹의 위축이) 장기적인 추세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베클리 교수는 "미국 역사를 보면 지난 80년이 일탈이었다"며 "미국인들은 다른 대륙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돼 잘살고 있다고 생각해왔으며, 이는 현재도 상당 부분 사실이다"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다른 문제에 있어서는 이념적으로 유연하게 대처했지만, 미국이 무역, 이민, 안보 측면에서 동맹국들에 의해 부당 대우를 받고 있다는 신념을 1980년대부터 유지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의 고문은 새 시대에 맞게 미국의 우선순위를 재고해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나토와 다른 동맹이 더 이상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을 고립주의자 대신 국가주의자라고 칭한다.
빌 클린턴과 조지 W. 부시, 버락 오바마 등 미국의 전 대통령들도 취임 당시에는 해외 문제보다는 국내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이를 지키지 못했다고 NYT는 전했다.
그러나 NYT는 최근 몇 년간 나토에서 탈퇴하겠다고 하거나 한국이나 독일에서 일방적으로 미군을 철수하려 한 트럼프 전 대통령만큼 동맹과 국제 협정에 적대적인 대통령은 없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파리 기후 협정, 이란 핵 협정,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과 다른 국제기구에서 탈퇴했다.
오바마 행정부에서 나토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이보 달더는 "트럼프가 미국 대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고립주의자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항상 이것(동맹)에 반대해왔던 유권자들을 동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달더가 대표로 있는 싱크탱크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이 여전히 동맹을 지지하지만, 트럼프 집권 당시 당에 따른 차이가 훨씬 벌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80%는 미국이 유럽 동맹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했지만,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는 이 비율이 80%에 불과했다. 동아시아 동맹에 대해서도 각 당 지지자의 답변 비율이 비슷했다.
게다가 공화당 내부에서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진영과 그렇지 않은 진영 사이에 의견이 분열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공화당원 중에는 40%만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에 찬성했지만,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는 공화당원은 이 비율이 59%로 나타나 전체 국민의 찬성 비율(63%)과 거의 비슷했다.
근본적 문제는 미국 대중이 동맹이 주는 가치 대신 그 대가만 보게 됐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GMF)의 헤더 콘리 회장은 "지난 20년 동안 국가 안보 지도자들은 (동맹의) 이익에 대한 이야기를 중단하고 비용에 관해서만 이야기했다"며 "그런데도 나토는 미국의 국가 안보 의제를 따랐다"고 지적했다.
나토 동맹국들이 미국에 맞춰 테러리즘과 싸우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지원하며 중국의 공세에서도 미국을 지지했다는 것이다.
콘리 회장은 현재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 등 반미 세력의 이해관계가 수렴하고 있다며 "바로 지금이 글로벌 동맹 구조가 필요한 때다. 이것이 우리의 비교 우위이자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dy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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