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유출된 심사위원들 이메일 통해 사실상 인정"
(서울=연합뉴스) 홍제성 기자 = '과학소설(SF)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휴고상 주최 측이 중국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을 다룬 작가의 작품을 최종 후보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5일(현지시간) 휴고상을 시상하는 세계SF대회(월드콘)의 운영위원회 측이 지난달 발표한 2023년 시상식 관련 데이터를 근거로 이같이 보도했다.
2023년 시상식은 지난해 10월 중국 쓰촨성 청두에서 월드콘 대회와 함께 개최됐다. 휴고상 시상식이 중국에서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우선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작가 RF 쾅(Kuang)이 특별한 이유 없이 최종 후보 명단에서 제외된 사실이 확인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쾅은 뉴욕타임스(NYT) 베스트셀러 작가로 10대 소녀를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시리즈 '양귀비 전쟁(아편전쟁)' 3부작으로 데뷔했다.
이 작품은 현대 중국 역사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주인공이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을 연상케 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또 중국 출신 캐나다 국적의 젊은 작가 시란 제이 자오(Xiran Jay Zhao)도 최종 후보 명단에서 제외됐다.
자오는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이자 논란의 인물인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부각되는 것을 작품에서 다룬 적이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자오는 자신의 후보 배제와 관련, "중국 정부에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이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영미권 작가 닐 게이먼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더 샌드맨' 6번째 에피소드도 충분한 추천을 받았음에도 최우수 드라마틱 프레젠테이션 후보에서 제외됐다.
앞서 게이먼은 중국 당국이 작가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다.
SF 작가인 폴 와이머 역시 최종 후보에 오르기에 충분할 만큼 추천을 받았지만, 후보자 명단에서 빠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심사위원단이 중국 측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의혹은 심사위원단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이 유출되면서 사실로 드러나는 분위기다.
휴고상 심사위원장인 데이브 맥카티는 지난해 6월 심사위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후보 작품이 중국, 대만, 티베트 또는 중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추천해도 안전할지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심사위원인 다이앤 레이시는 다른 심사위원들에 보낸 성명에서 "우리는 중국, 대만, 티베트 문제 등 중국이 민감해하는 이슈를 다룬 작품을 면밀히 심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부끄럽게도 그렇게 했다"고 털어놓았다.
가디언은 이런 사실은 SF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많은 팬과 작가들은 휴고상이 검열로 인해 오염됐다는 우려를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런 논란 속에 올해 수상작을 심사해야 할 2024년 월드콘 위원회 위원 일부가 사임하기도 했다.
휴고상은 미국 SF계의 아버지로 불리는 휴고 건즈백을 기념하기 위해 1955년 만들어진 상으로 SF소설의 노벨상으로 불릴 만큼 권위 있는 상이지만, '중국 눈치보기 논란'으로 그 권위가 일부 퇴색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j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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