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쟁 2년] 기약없는 평화…장기전 피로감이 '최대 적'

입력 2024-02-20 06:00  

[우크라전쟁 2년] 기약없는 평화…장기전 피로감이 '최대 적'
우크라, 작년 6월 대반격 좌초돼 고전…군수장과도 불화
러, 작년 말부터 공세 강화해 격전지 점령…푸틴은 재선 유력
전쟁 피로감에 美지원 주춤…11월 미국 대선 결과가 최대 변수


(이스탄불=연합뉴스) 김동호 특파원 =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이 만 2년을 맞는다.
현격한 전력차로 단기전이 될 것으로 보였으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신속하고 전폭적인 지원 속에 전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전쟁의 성격이 서방과 반미 진영의 대결로 규정되면서 국제사회는 '신냉전' 구도로 재편됐다.
우크라이나는 초반 방어에 성공했지만 지난해 6월 개시한 대반격이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점차 러시아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기전에 따른 피로감에다 지난해 10월 가자지구 전쟁이 발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관심이 식어간다는 우려가 커졌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러시아와 북한이 군사적으로 더욱 밀착, 유럽의 전쟁은 한반도 정세에도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 우크라, 초반 선방했지만 대반격 좌초
20만 병력을 이끌고 거침없이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한 러시아의 물량 공세에 국제사회는 순식간에 우크라이나가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달간 공세를 버틴 우크라이나는 서방의 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2022년 9월 들어서는 동북부 하르키우를 대부분 수복하며 한동안 기세를 올렸다.
겨울철 러시아의 집요한 후방 인프라 공습을 견디며 전방 참호전을 치른 우크라이나는 영토 탈환을 위한 대반격 작전을 준비하던 지난해 5월 러시아 바그너그룹 용병에 격전지 바흐무트를 빼앗겼다.
곧 시작된 반격도 러시아의 방어 태세에 막혀 고전을 거듭했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에이태큼스(ATACMS) 지대지 미사일, 스톰 섀도 미사일 등 미국 유럽의 최신 무기가 우크라이나에 공급될 때마다 '게임 체인저'로 기대를 모았으나 전쟁의 변곡점이 되진 못했다.
러시아는 작년 말부터 공격 강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작년 12월 29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미사일 122기와 무인기(드론) 36대를 발사하며 개전 이래 최대 규모의 공습을 감행했다.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아우디이우카도 17일 러시아 수중에 떨어졌다.


◇ 장기전에 전쟁 피로감…서방 지원 주춤, 러·북은 밀착
우크라이나에는 장기전 피로감 속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각국을 동분서주하며 "포탄을 달라"고 호소하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모습이다.
최대 후원자인 미국이 가자지구 전쟁으로 시선이 분산된 탓이 크다.
11월 미국 대선의 판세도 우크라이나엔 달갑지 않다.
"당선되면 24시간 안에 전쟁을 해결하겠다", "러시아가 하고 싶은 일(나토 회원국 공격)을 하도록 독려하겠다"는 식의 '위험한' 언급을 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하다는 여론조사가 많기 때문이다.
국내 상황도 '결사 항전'의 의지로 뭉쳤던 전쟁 초반과는 사뭇 다르다.
2년 내내 군을 이끌며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던 발레리 잘루즈니 총사령관은 최근 수개월간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불화설에 시달리다가 지난 7일 전격 경질됐다.

일각에서는 그가 비밀리에 서방과 휴전 논의를 하다가 발각됐다는 말이 돌았으나 국민적 지지가 큰 잘루즈니에 대한 견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만큼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도력이 의심받고 있다는 뜻이다.
러시아 역시 장기전에 대한 부담은 마찬가지지만 푸틴 대통령은 다음달 대선에서 압도적 당선이 유력할 정도로 내부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이변'이었던 작년 6월 바그너그룹 지도자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쿠데타 시도 역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러시아는 최근 북한에서 탄도미사일을 지원받아 전장에 투입하고 있다는 정황까지 포착됐다. 이같은 러·북의 밀착은 한반도 정세를 불안케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 가능성 낮은 평화협상…미 대선에 주목
양국이 진지하게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세계 80여개국이 참여해 우크라이나 종전 구상과 평화 계획을 논의하는 우크라이나 평화공식 국가안보보좌관 회의도 4차례나 열렸지만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와, 중국 등이 빠져 말잔치만 되풀이됐다.
우크라이나로서는 실지를 포기할 수 없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포기, 점령지 합병 등 상대방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향후 협상에서 불리한 조건으로 휴전을 체결하라는 압박을 받지 않기 위해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공세로 전환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교착 국면에서 미국 국무부가 '우크라이나 영토 탈환'을 목표에서 배제한 새로운 장기 전략을 수립했다는 최근 보도는 주목할 만하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끝내려면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어서다.
전쟁의 향방에 대해선 미국 대선 결과가 최대 변수로 지목된다. 미국 정권이 바뀌면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 역시 급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푸틴 대통령이 11월 대선 때까지 현 상황을 유지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 우크라 재건 비용 눈덩이…400만 피란민 시름
에너지·식량 대란과 물가 폭등 사태는 어느 정도 적응됐지만 장기전이 세계 경제에 미치는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국토 전역이 전쟁터가 된 우크라이나의 피해도 막심하다.
지난 16일 유엔과 우크라이나, 유럽연합, 세계은행(WB) 등이 공동으로 평가한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 추정액은 향후 10년간 4천860억 달러(649조2천억여원)다.
지난해 3월 추산했던 4천110억 달러(549조여원)에서 18% 증가한 액수다.
전쟁의 포화를 피해 조국을 등진 피란민의 고단한 삶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유럽연합망명청(EUAA) 통계에 따르면 작년 10월까지 독일, 폴란드 등 해외로 나간 우크라이나 피란민은 약 416만명이다.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우크라이나 본토에 남은 이들과 유럽 곳곳을 떠도는 피란민의 약 절반 이상이 재정난을 겪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비르기트 비쇼프 에베센 IFRC 유럽지역 이사는 "전쟁 발발 직후에 국제사회가 보여준 우크라이나인 구호를 위한 헌신과 협력이 지금도 필요하다"면서 "우리는 눈을 감고 있어선 안 되며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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