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최대 피해 기업…과거 유럽시장 회복 불능"
중앙아·중국·터키로 눈 돌려…"더는 권력 자금줄 안 될 것"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가스프롬이 핵심 고객인 유럽의 판로가 붕괴되면서 고전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피해 기업 중 하나가 됐다며 과거와 같은 유럽 시장을 되찾기는 어렵고 당분간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고 1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말 가스프롬이 중국에 대한 기록적인 판매를 보고한 후 오랜 친분이 있는 알렉세이 밀러 최고경영자(CEO)에게 "훌륭하다"라며 치하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18일 자국 언론 인터뷰에서는 예전에 에너지 수출을 통해 더 많은 이익을 낸 것은 인정하면서도 사업 손실로 인해 문제가 야기되고 있다는 점은 부인했다.
그는 "아마도 (이전에) 더 재미가 좋았을지 모르지만, 다른 면으로 우리 경제의 비에너지 부분이 성장하고 있어 에너지에 덜 의존할수록 더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가스프롬의 속사정은 푸틴의 호언만큼 좋은 것은 아니다.
러시아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초기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줄였고, 이는 가격을 끌어올려 수출 부진을 상쇄했다.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가지 못했다.
가스프롬은 세전이익이 2022년 상반기에 4조5천억 루블(66조5천억원)이라는 기록을 세웠지만, 1년 후에는 2조7천억 루블로 40% 감소했다. 순이익은 1조 루블(14조5천억원)에서 2천550억 루블로 4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국영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연구원들은 가스프롬이 2023년 전체로는 이익이 나질 않고, 2025년까지 순손실이 1조 루블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일부 전문가는 가스프롬으로서도 앞으로는 과거의 유럽만큼 큰 시장을 갖지 못할 것을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유럽연합(EU)은 예상과 달리 러시아산을 대체해 가스 조달처를 잘 찾아냈고, 그 사이 가격은 전쟁 초기 최고치에서 폭락했다.
EU 데이터에 따르면 EU의 가스 수입에서 러시아 비중은 2021년 40% 이상에서 지난해 8%로 축소됐다.
EU는 2027년까지 러시아 화석연료의 전면적인 수입 철폐를 목표로 한다.
반면, 가스프롬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고객과 함께 중국과 터키를 통해 공급을 늘렸지만, 이는 유럽시장 상실분의 5~10% 만회에 그칠 뿐이라고 러시아 에너지금융연구소의 마르셀 살리코프 소장은 전했다.
더욱이 중앙아시아에는 유럽보다 많이 싼 값으로 공급해 수익이 적다.
중국에는 지난해 220억 세제곱미터(㎥)를 수출했지만, 이는 전쟁 전 10년간 유럽으로 수출한 연평균 2천300억㎥의 일부에 불과하다.
유럽에 한때 공급했던 가스전을 중국으로 연결하는 3천550km의 '시베리아의 힘 2'(PS2) 건설에 합의하면 전망이 개선될 수 있으나, 설사 합의가 끝나더라도 건설에는 몇 년이 필요하다.
다만 석유 부문 자회사인 가스프롬 네프트가 좋은 실적을 보인 것은 가스프롬에는 다소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가스프롬 네프트는 모회사의 주요 생명선이 됐는데, 지난해 상반기의 경우 매출의 36%, 순이익의 92%에 기여했다. 또 시장 가치는 지난해 모회사를 능가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가스프롬이 푸틴 대통령의 친구 등 휘하 일당에게 이익을 넘겨주는 통로로 이용됐으며, 이런 내용은 러시아에서 터부시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전 러시아 에너지부 차관인 블라디미르 밀로프는 FT에 "가스프롬은 결코 다시는 권력자들에게 큰 자금줄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막대한 이익을 내기는커녕 국고보조금을 받을 위험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밀로프 전 차관은 2000년대 초 가스프롬 개혁의 설계자였으며, 이후 지난주 사망 소식이 전해진 푸틴의 최대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협력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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