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상대 원유 수출, 우크라전 이후 13배로 급증
그림자 선단·유령 석유회사 등 동원해 제재 회피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 러시아 정부가 서방의 제재에도 인도에 대한 원유 수출 등에 힘입어 지난해 세입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전례 없을 정도로 막대한 자금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러시아는 소유권 등이 불투명한 '그림자 선단'과 정체불명의 석유 거래상 등을 동원해 서방의 제재를 회피하면서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있다고 미국 CNN 방송이 19일(현지시간) 진단했다.
미 싱크탱크 랜드(RAND)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 연방정부의 세입은 역대 최대인 3천200억 달러(약 428조원)를 기록했으며, 올해도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세입의 약 3분의 1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인 것으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추산했으며, 올해는 그보다 더 높은 비율의 세입이 전쟁에 투입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든든한 돈줄에 힘입어 러시아군은 서방의 지원이 거의 말라붙은 우크라이나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자금줄이 건재한 것은 인도 등지에 대한 원유 수출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핀란드 비정부기구(NGO)인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CREA)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인도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규모는 370억 달러(약 49조5천억원)로 전쟁 이전보다 13배 이상 불어났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산 원유 거래를 중단하자 인도는 재빠르게 러시아산 원유 수입에 나섰다.
해운 분석기업 윈드워드에 따르면 지난해 러시아에서 인도로 직접 운항한 유조선 배편은 588편에 달했다.
게다가 러시아가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마련한 그림자 선단을 이용해 은밀하게 행해지는 양국 간 원유 거래도 활발하다고 CNN은 전했다.
이달 초 그리스 남부 기티오항에서는 유조선 2척이 나란히 붙어서 '선박 대 선박'(ship-to-ship) 원유 환적을 행하는 광경이 CNN 취재진에 포착됐다.
선박 대 선박 환적은 화물을 항구가 아닌 해상에서 다른 선박으로 옮기는 것으로, 이를 통해 화물의 원산지나 목적지를 숨길 수 있어서 불법이다.
이 유조선 두 척 모두 수 주 전 러시아에서 출항했으며, 한 척은 제재 위반 관여 혐의를 받는 인도 회사 소유의 선박이고 나머지 한 척은 과거 미국 제재 대상인 한 개인이 과거 소유했던 배라고 선박 모니터링 기업 폴스타 글로벌이 전했다.
폴스타 글로벌에 따르면 이처럼 러시아에서 출항한 선박이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앞바다에서 인도행 선박과 만나 선박 대 선박 환적을 실시한 경우가 지난해 200건 이상으로 나타났다.
이 해역은 흑해에서 수에즈 운하를 거쳐 아시아로 향하는 항로 중간에서 살짝 빠지는 곳이다.
폴스타 글로벌의 데이비드 테넌바움은 이 해역이 외부와 접촉이 거의 없어서 몰래 선박 대 선박 환적이 가능한 곳이라면서 이런 거래의 일차적 목적은 서방 제재 회피로 의심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소유권이 불투명한 수백 척의 유조선이 복잡한 경로를 이용해 움직이는 그림자 선단을 통해 서방의 제재를 견뎌낼 수 있는 해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고 CNN은 설명했다.
윈드워드는 이런 그림자 선단의 규모가 지난해 1천800여척으로 불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인도 정유사들이 이렇게 들여온 러시아산 원유를 가공 생산한 정유제품은 제재 대상에서 제외돼 미국 등지로의 수출이 오히려 늘어났다.
CREA에 따르면 미국은 2022년 12월부터 작년 연말까지 인도 정유사에서 러시아산 원유로 생산한 정유제품 13억 달러(약 1조7천400억원)를 수입, 최대 수입국이 됐다.
이 같은 정유제품의 미국 등 서방 국가 수출액은 지난해 91억 달러(약 12조2천억원)로 전년보다 44% 급증했다.
또 서방 원유 거래상들이 러시아산 원유에서 손을 떼자 '노르드 액시스' 등 수수께끼의 몇몇 무명 거래상들이 그 공백을 메우며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출하고 있다고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다.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거래상 에티바르 에이유프가 운영하는 노르드 액시스 등 기업 5곳이 지난해 수출한 러시아산 원유·정유제품은 최소한 330억 달러(약 44조2천억원)에 이른다고 우크라이나 키이우경제대학(KSE)이 추산했다.
이는 러시아산 원유 전체 수출의 약 5분의 1에 해당한다.
에이유프는 노후 유조선들을 끌어모으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홍콩 등지의 여러 페이퍼 컴퍼니를 통한 복잡한 거래를 통해 제재를 회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국영 석유기업 로스네프트의 경우 제재로 서방 원유 거래상들과 거래가 막히자 소유권과 경영이 불투명한 노르드 액시스 등에 원유 수출을 의존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은 인도 등지에 러시아산 원유를 계속 수출하면서 서방 제재의 틈새를 파고 들었다.
이에 대해 인도 정부는 자국이 러시아산 원유를 수입하는 만큼 일반 국제 원유시장의 수요가 줄어 국제 유가 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라고 CNN은 덧붙였다.
jhpar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