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바나나 제재'에 화들짝…에콰도르, 우크라 무기 지원 철회
WSJ "강대국 갈등서 한쪽 편들기 어려운 약소국 처지 잘 드러나"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남미 국가 에콰도르가 옛소련 시절 만들어진 무기를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가 러시아의 에콰도르산 농산물 제재로 이를 철회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가브리엘라 소메르펠드 외교장관은 전날 국회 청문회에서 "에콰도르가 국제적 무력 충돌에 처한 국가에 어떠한 전쟁 물자도 보내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명확한 지침이 있다"고 말했다.
한 에콰도르 고위 당국자도 지난주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무기를 보내면 (분쟁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노보아 행정부가 먼 나라의 분쟁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말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자국이 보유한 옛 소련제 무기와 2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현대 무기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뒤엎는 것이다.
에콰도르는 소련제 군용 헬리콥터·장거리 로켓 발사장치·방공 시스템 등을 미국에 보내고, 미국은 이를 소련제 무기에 익숙한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합의 내용에 대해 에콰도르가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하고 바나나 등 에콰도르산 농산물에 금수 조치를 내렸다.
러시아 검역 당국인 수의식물위생감독국은 지난 6일 에콰도르 업체 5곳의 바나나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며 해당 업체 물량의 수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또한 에콰도르산 꽃 수입도 금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 조치는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국인 에콰도르에 큰 타격을 줬다.
전체 인구가 약 1천800만명인 에콰도르는 매년 35억달러 규모의 바나나를 생산하며 관련 산업 종사자가 30만명에 이른다.
에콰도르의 연간 바나나 생산량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8억달러어치가 러시아로 수출된다고 WSJ은 전했다.
에콰도르는 또한 장미 등 꽃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초 노보아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고철'을 주고 마약 밀매 조직 소탕에 필요한 최신 무기를 얻게 됐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한다"고 말한 바 있으나, 핵심 수출 품목이 제재에 처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소메르펠트 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무기 간접 지원 방침 철회를 시사하기 수일 전인 지난 16일, 러시아 당국은 앞서 내렸던 에콰도르산 바나나 금수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WSJ는 에콰도르의 이번 '유턴'을 통해 약소국이 강대국 간의 갈등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설 경우 마주하게 되는 위험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또한 러시아가 이전에도 지정학적 갈등에서 보건 문제를 빌미로 상대국 주요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전술'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에 속했던 조지아와 몰도바가 친(親)서방 노선을 취하자 이들 국가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에 살충제 성분이 있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한 바 있다.
inishmor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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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 "강대국 갈등서 한쪽 편들기 어려운 약소국 처지 잘 드러나"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남미 국가 에콰도르가 옛소련 시절 만들어진 무기를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가 러시아의 에콰도르산 농산물 제재로 이를 철회했다.
20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FP통신 등에 따르면 가브리엘라 소메르펠드 외교장관은 전날 국회 청문회에서 "에콰도르가 국제적 무력 충돌에 처한 국가에 어떠한 전쟁 물자도 보내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명확한 지침이 있다"고 말했다.
한 에콰도르 고위 당국자도 지난주 WSJ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간접적으로 무기를 보내면 (분쟁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전쟁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며 노보아 행정부가 먼 나라의 분쟁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지난달 말 다니엘 노보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자국이 보유한 옛 소련제 무기와 2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현대 무기를 교환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한 내용을 뒤엎는 것이다.
에콰도르는 소련제 군용 헬리콥터·장거리 로켓 발사장치·방공 시스템 등을 미국에 보내고, 미국은 이를 소련제 무기에 익숙한 우크라이나군에 지원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 같은 합의 내용에 대해 에콰도르가 "무모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하고 바나나 등 에콰도르산 농산물에 금수 조치를 내렸다.
러시아 검역 당국인 수의식물위생감독국은 지난 6일 에콰도르 업체 5곳의 바나나에서 해충이 발견됐다며 해당 업체 물량의 수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은 또한 에콰도르산 꽃 수입도 금지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이 조치는 세계 최대 바나나 수출국인 에콰도르에 큰 타격을 줬다.
전체 인구가 약 1천800만명인 에콰도르는 매년 35억달러 규모의 바나나를 생산하며 관련 산업 종사자가 30만명에 이른다.
에콰도르의 연간 바나나 생산량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8억달러어치가 러시아로 수출된다고 WSJ은 전했다.
에콰도르는 또한 장미 등 꽃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다.
당초 노보아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고철'을 주고 마약 밀매 조직 소탕에 필요한 최신 무기를 얻게 됐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진행한다"고 말한 바 있으나, 핵심 수출 품목이 제재에 처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소메르펠트 장관이 의회 청문회에서 무기 간접 지원 방침 철회를 시사하기 수일 전인 지난 16일, 러시아 당국은 앞서 내렸던 에콰도르산 바나나 금수 조치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WSJ는 에콰도르의 이번 '유턴'을 통해 약소국이 강대국 간의 갈등에서 어느 한쪽 편에 설 경우 마주하게 되는 위험을 알 수 있다고 짚었다.
이 신문은 또한 러시아가 이전에도 지정학적 갈등에서 보건 문제를 빌미로 상대국 주요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는 '전술'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러시아는 옛 소련에 속했던 조지아와 몰도바가 친(親)서방 노선을 취하자 이들 국가의 주요 수출품인 와인에 살충제 성분이 있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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