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유족 요청 받아들여 재조사 명령
(서울=연합뉴스) 권수현 기자 = 칠레 출신의 세계적 저항 시인이자 정치인 파블로 네루다(1904~1973)의 타살 의혹과 관련해 칠레 법원이 그의 사망 원인을 재조사하라는 판결을 했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산티아고 항소 법원은 네루다의 사망 사건을 다시 조사해달라는 유족의 요청을 거부한 원심을 깨고 재조사를 진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네루다의 사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유족이 요청한 재조사 절차를 밟으라고 명령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1심 판사는 네루다의 공식 사망 원인인 암 외에 다른 원인이 있는지 재조사를 해 달라는 유족의 요청을 기각했다.
네루다의 조카인 로돌포 레예스는 캐나다와 덴마크의 법의학 전문가들이 네루다의 유골에서 식중독균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을 다량 발견했으며 이는 독살 증거라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은 치명적인 신경독소를 배출해 신경 마비 증세를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1심 판사는 법의학 조사 결과가 이미 나왔고 다시 조사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이를 거부했다.
하지만 항소법원은 만장일치로 원심을 뒤집고 재조사를 하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네루다의 사망진단서 글씨체 분석, 이전에 외국 기관에서 진행한 검사 결과 분석,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 전문가 진술 등 재조사가 이뤄지게 됐다.
칠레의 '국민 시인'으로 일컬어지는 네루다는 20세기 남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사회주의자로 외교관과 칠레 공산당 의원으로도 활동했다.
초기에는 정열적인 연시(戀詩)로 명성을 얻었고, 마드리드 주재 영사로 있던 시절 스페인 내전을 겪은 뒤에는 독재를 고발하고 민중의 애환을 다룬 작품들을 썼다.상원의원으로 활동하다 1969년 공산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으나 살바도르 아옌데를 인민연합 단일후보로 추대하고 사퇴했다.
이듬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네루다는 프랑스 주재 대사로 부임했고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후 전립선암으로 대사직에서 물러난 그는 1973년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숨지고 칠레의 첫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자 이를 비판하다 쿠데타 발발 12일 만에 숨졌다.
공식적인 사망 원인은 전립선암 악화였지만 피노체트 군부에 암살됐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AP통신은 당시 네루다가 멕시코로 망명해 군부 정권을 계속 비판할 계획을 세웠으나 출발 하루 전 구급차로 산티아고의 한 병원으로 이송돼 숨졌다고 전했다.
네루다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그의 시신이 2013년 발굴됐지만 당시 검사에서는 유골에 남은 독성 물질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유족 등은 계속 재조사를 요구해왔다.
칠레 정부는 2015년 네루다의 죽음에 "제삼자의 책임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칠레 당국은 2017년에는 네루다의 치아 등 유골 일부에서 클로스트리듐 보툴리눔이 발견됐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inishmor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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