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수익성·주주환원 끌어올릴 계획 수립해 자율 공시토록
세제 지원 등 '당근'으로 자발적 참여 유도…"유인 부족"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오지은 기자 = 금융당국이 26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과 주주가치 존중 문화의 확산을 통해 한국 증시를 한 단계 도약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의 적극적인 호응과 장기적인 추진 동력이 정책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 참여를 유인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韓증시 규모는 세계 13위인데…코스피 상장사 66% 장부가치 이하
국내 증시는 지난 십수년간 눈부신 양적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지지부진한 주가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금융위와 거래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한국 증시(코스피·코스닥 합산) 시가총액은 2천558조원으로 주요국 13위 수준까지 성장했지만 순자산 또는 순이익 대비 주가 수준은 현저히 뒤떨어진다.
한국 주식시장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작년 말 기준 1.05배, 10년 평균 1.04배로 집계됐다. PBR 1배 수준이라는 건 순자산의 장부가치 수준에서 주가가 형성됐다는 의미다.
이는 작년 말 기준 미국(4.55배) 등 선진국 평균(3.10배)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일 뿐 아니라 대만(2.41배), 인도(3.73배), 중국(1.13배) 등 신흥국 평균(1.61배) 대비로도 낮은 것이다.
코스피 상장사 526개(65.8%)와 코스닥 상장사 533개(33.8%)의 주가는 장부가보다도 저평가된 PBR 1배 이하를 기록했다.
작년 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19.78배로 주요국과 비교 시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배당 등 미흡한 주주환원 정책과 저조한 수익성, 불투명한 지배구조등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유력 원인으로 꼽아왔다.
금융위는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자본의 효율적 활용 및 생산성 향상이 긴요한 시점"이라며 "국민 입장에서도 근로 소득 이외 자산 소득을 통한 안정적 현금 흐름 확보 필요성도 커졌다"고 판단했다.
◇ 상장사에 자발적인 '밸류업' 요구…일본 증시 호황 참고
이날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도 국내 기업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과 함께 향유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 구축'을 목표로 했다.
상장사들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자율적으로 수립·이행·소통하고, 이를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세제 방안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골자다.
기업들에 의무 조항을 주지 않고, 시장 압력에 맡기는 방식을 택한 것도 특징이다.
금융당국은 기업가치 우수 기업들로 구성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하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연내 상장시켜 주주가치 존중 기업이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국민연금 등 '큰 손'들의 투자 판단에 활용될 수 있도록 스튜어드십 코드(기관 투자자 행동 지침)에도 '투자 대상 회사의 밸류업 노력을 점검해야 한다'는 취지의 조항을 반영한다.
이는 도쿄거래소의 기업가치 제고 권고 및 그에 따른 일본 증시 호황세를 벤치마크한 것이다.
도쿄거래소는 작년 3월부터 상장사들에 자본 효율성 제고 및 지속 가능한 성장 달성을 위한 기업가치 개선 방침과 이행 계획 등을 공개하도록 요구했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 프라임시장 상장사의 40%가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공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증시 밸류업 기대감에 엔저 효과 등이 더해지면서 최근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지수)가 역사적 고점을 경신하며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대규모 매수세가 증시를 끌어올리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증시도 금융위가 연초 업무 계획을 통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을 시사한 이후 저PBR 업종이 급등하는 등 증시 훈풍에 대한 기대감이 지속돼왔다.
◇ 단기 테마 아닌 중장기적 문화돼야…"이 정도론 변화 어려워" 평가도
핵심은 이번 정부 정책이 '일회성 주주환원'이나 '단기 테마' 성격에 그치지 않고 장기 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다.
중장기적인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필수적이다.
일단 시장에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인한 상승장이 당분간 연장될 것이란 기대감이 우세하다.
황준호 상상인증권 연구원은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감으로 외국인 투자자의 순매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해당 이슈로 인한 상승 모멘텀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밸류업 프로그램을 반영해 코스피 목표 전망치를 상향 조정 중이다.
모건스탠리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상승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며 올해 말 코스피 목표지수를 2,700에서 2,850으로 올려 잡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세제 지원책이 공개되지 않는 등 기업들의 참여를 유인할 인센티브가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관기관 관계자는 "이 정도로는 시장에 변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며 "구체적인 세제·세정 지원은 모범 납세자 선정 같은 내용뿐인데 기업들이 체감할 수 있는 인센티브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기업 특유의 지배구조도 일본 사례와 다른 지점이란 분석도 나온다.
일본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오너(총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다는 것이다.
황용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소액투자자, 기관투자자, 외국인 투자자가 유입되면 증시는 오를 것"이라며 "그러나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적극적인 호응을 할 것 같지 않다"고 예상했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