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농업 장관회의 맞춰 900여대 집결…한층 격화된 시위에 '아수라장'
EU "농민들 부담 완화 해법 마련"…일각에선 '폭력시위에 굴복' 비판도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의 성난 농민들이 '트랙터 부대'를 앞세워 26일(이하 현지시간) 오전 유럽연합(EU) 본부 문턱까지 진격했다.
이달 초 EU 정상회의 이후 약 3주 만에 EU 농업 장관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에 다시 집결한 농민들은 농산물 수입, 소득 감소에 격렬히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브뤼셀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11시 기준 브뤼셀 EU 지구 일대에 집결한 트랙터는 약 900대다. EU 지구에는 집행위, 이사회 등 EU 본부가 모여 있다.
당초 많아야 300대 정도가 모일 것으로 예상됐으나 전날 밤부터 이날 오전까지 벨기에, 프랑스 등 각지에서 속속 도착한 트랙터가 브뤼셀 도심을 다시 한번 점령했다.
시위는 시작부터 곳곳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연출됐다.
경찰이 오전 6시께부터 EU 본부 주변 도로를 통제했지만 허사였다.
트랙터는 바리케이드를 뚫고 집행위 건물과 약 300m 정도 떨어진 슈만 광장 인근까지 밀려들었다.
이후에도 길게 늘어선 트랙터들이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며 EU 본부 주변에 배치된 진압경찰을 향해 돌진을 시도하는 위험한 장면이 이어졌다.
일부 농민은 집행위와 이사회 건물 사이를 지나는 도로 한복판에 타이어 수십 개를 쌓아 올리고 건초를 덮고서 불을 질렀다.
트랙터에는 'EU-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 자유무역협정(FTA)을 중단하라', '수입 농산물은 공해' 등 현수막이 내걸렸다.
앞서 EU는 각지에서 확산한 트랙터 시위에 농민들의 휴경 의무를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우크라이나 농산물에 대한 관세 면제 혜택을 사실상 제한하기로 하는 등 부랴부랴 대책을 내놨다. 농가 행정부담 완화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긴급 대책도 성난 농심을 달래진 못했다.
벨기에 남부 왈롱지방의 농민연맹(FUGEA) 소속 티모시 페텔은 현지 매체 벨가통신에 "집행위는 우리가 요청하지도 않은 환경규제 보류, 행정부담 완화 등을 제안했다"며 "이는 물론 농민들에게 필요한 조처지만 공정한 농산물 가격을 설정하자는 우리의 최우선 요구사항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날 EU 본부 인근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운행 중단 명령을 내렸다.
통상 집회·시위가 열리는 중에도 EU 직원과 기자들의 경우 출입증이 있으면 EU 건물을 출입할 수 있었지만, 이날은 거의 모든 출입구가 봉쇄됐다.
이에 EU 농업 장관회의를 취재하려던 기자들이 강력히 항의하는 소동도 빚어졌다. 취재진은 한참을 밖에서 기다린 뒤에야 EU 관계자를 따라 건물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시위 주동자들이 '오늘은 그냥 놀러 온 게 아니다'라고 하더라"라며 "상황이 시시각각 변해 한 번 나가면 다시 회의장 출입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EU는 이날도 농민들 달래기에 급급했다.
27개국 농업 장관들은 회의에서 "농민들의 행정 부담의 완화를 우선순위에 두기로 합의했으며, EU 집행위에 더 장기적인 해법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고 EU는 전했다.
일각에서는 폭력 시위에 EU가 굴복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브뤼셀타임스에 따르면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충돌하면서 최소 3명의 경찰관이 다쳤다.
야누시 보이치에호프스키 EU 농업 담당 집행위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폭력 시위를 벌여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내 역할은 시위 대응이 아니다"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보면 우리는 시위 이면에 있는 원인을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고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항변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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