숄츠 총리 등 반대하지만 70여년간 이어온 비핵화 기조 균열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점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안보 무임승차' 논란의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에서 독자 핵무장 주장이 고개를 들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독일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 수주간 유럽의 양대 핵무기 보유국인 영국, 프랑스와 협력해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올해 11월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나토의 집단방위를 무력화하고 핵우산 제공을 중단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학계 일각에선 아예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해 독자적 핵무력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는 '무임승차자'라고 주장해 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달 10일 사우스캐롤라이나 유세에서 "난 당신네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과거 나토 회의에서 한 동맹국 정상에게 안보 분담금 증액을 압박했던 당시를 언급하면서 "나는 그들(러시아)이 원하는 것을 내키는 대로 모조리 하라고 격려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는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받으면 31개 회원국 전체가 반격에 나선다는 나토의 집단방위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나토 군사력 대부분을 차지하며 사실상 나토를 지휘해 온 미국의 이탈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에 유럽 국가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핵무장론을 거론한 첫 독일 당국자는 크리스티안 린트너 재무장관이었다.
린트너 장관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과 관련해 현지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대신 프랑스와 영국에만 의존할 수 있겠느냐면서 너무 늦기 전에 핵무장과 관련한 금기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1 야당 기독민주당(CDU)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대표와 중도좌파 사회민주당(SPD) 주요 인사 일부도 동조하고 나서면서 독일에서 독자 핵무장과 관련한 논쟁에 불이 붙었다.
독일 정치학자 막시밀리안 테르할레는 미국에서 전략 핵탄두 1천발을 구매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이를 합치면 유럽 단독으로 1천550개의 핵탄두를 보유해 러시아의 잠재적인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는 게 테르할레의 주장이다.
하지만, 올라프 숄츠 총리와 아날레나 베어보크 외무장관,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국방장관 등 독일 정부 주요 인사 다수는 독자 핵무장은 물론, 프랑스·영국과의 핵협력에도 부정적인 입장으로 전해졌다.
나토의 핵억지 전략에 의존하면서 대공 방어 강화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선택이라는 이유에서다.
독일은 핵무기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핵무기 투발을 위한 이중용도 항공기(Dual-Capable Aircraft·DCA)는 운용하고 있다. 나토의 '핵무기 공유' 정책에 따라 유사시 미국 핵폭탄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핵무기 최종 사용 권한은 어디까지나 미국에 있다.
독일은 유럽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프랑스에 맞서 미국이 보유한 핵무기가 나토 핵억지력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입장을 오랫동안 고수해 왔다.
독일이 프랑스의 핵우산 아래 들어간다면 유럽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 관여가 줄어들 우려가 있는 데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으로써 지난 70여년간 평화주의를 고수하며 원자력과 핵무기 포기를 공언해 온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 까닭에 독일에서 자체 핵무장론이 제기됐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라고 WSJ은 지적했다. 현지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되지 않더라도 중국과 패권 경쟁 중인 미국이 유럽에 대한 관여를 줄이는 건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다만, 독일의 자체 핵무장에는 넘어야 할 법적·현실적·정치적 난관이 적지 않다고 WSJ은 지적했다.
독일은 1970년 발효된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국이고 미국, 영국, 프랑스, 옛 소련과 동·서독의 통일을 확정한 1990년 통일 조약에서도 핵무기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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